■ 비닐 안 쓰기
“친환경 유기농 화장품도 포장재는 비닐…
소비자가 깨어있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
쌀, 라면, 김, 파스타, 한약, 저온 착즙 주스, 찹쌀떡, 빵….
‘음식’이라는 것 말고도 이 단어들이 갖는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비닐 포장이다.
이 음식들은 지난 며칠 간 기자가 집에서 먹은 것들 중 비닐 포장이 돼 있었던 품목들 중 일부다.
‘비닐 안 쓰기’를 실천한 지 어언 3주째로 접어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새로 반입한 비닐은 없는데 재활용품 배출 때 반출하는 비닐양은 줄지 않았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비닐이 줄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니 범인은 바로 포장재였다. 시장 장 보기로 조금이나마 가능했던 신선 식품 구입 시 비닐 쓰지 않기와는 달리, 비닐 안 쓴 가공 식품 구입은 아예 불가능하다.
봉지라면을 예로 들어 보자면, 보통 묶음 형태로 구입하는 5개입 라면의 경우 외부 비닐과 라면 각각의 포장, 분말 스프, 건더기 스프 비닐 수를 헤아려보면 최소 16장의 비닐을 사용한다. 이는 라면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아마 각 가정마다 비닐 재활용 쓰레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비닐 포장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비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비닐을 사용한 포장재가 있다. 코팅된 종이다. 케이크 상자, 택배 상자, 상품마다 붙어 있는 가격표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종이에는 어김없이 비닐 코팅이 돼 있다.
기자는 2019년 경, 친환경 유기농 화장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택배 박스가 비닐 코팅지였다. 흔한 택배 박스가 아닌 예쁜 빛깔의 핑크색 박스였지만 코팅이 돼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기분이 상했다. 말로만 친환경을 부르짖으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바로 ‘고객의 소리’에 포장재를 바꿔달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회사로부터 “검토하겠다”는 의례적인 답변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회사에서 보낸 광고 알림에 ‘친환경 포장재’로 바꾼다는 내용이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진작에 그렇게 할 것이지….’
모든 환경 문제가 그렇듯 사실 소비자보다는 기업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비닐 소포장이나 코팅의 경우를 보아도, 기업이 애초에 사용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분리수거하거나 폐기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업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소비자들에게 있다.
요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들의 ‘어택’(attack) 운동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리필이나 재활용에 비협조적인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 폐기물들을 소비자들이 모아 연대 서명과 함께 기업에 되돌려주는 것이다.
‘스마트슈머’(똑똑한 소비자)를 넘어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슈머’, ‘그린슈머’가 대세인 요즘, 비닐 줄이기를 위한 근본적인 노력에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