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 세 번째 이야기

입력일 2021-03-02 수정일 2021-03-03 발행일 2021-03-07 제 323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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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마음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첫 시작은 호기로웠다. 그 다음은 주변의 도움으로 다행히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과정이다. 날 좋은 주말에 ‘내가 왜 이런 고생을?’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지만,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기며 마음가짐을 다잡아 본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가 진 십자가도 이웃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일주일 동안 집에서 모은 비닐들.

■ 비닐 안 쓰기

“친환경 유기농 화장품도 포장재는 비닐…

소비자가 깨어있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

쌀, 라면, 김, 파스타, 한약, 저온 착즙 주스, 찹쌀떡, 빵….

‘음식’이라는 것 말고도 이 단어들이 갖는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비닐 포장이다.

이 음식들은 지난 며칠 간 기자가 집에서 먹은 것들 중 비닐 포장이 돼 있었던 품목들 중 일부다.

‘비닐 안 쓰기’를 실천한 지 어언 3주째로 접어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새로 반입한 비닐은 없는데 재활용품 배출 때 반출하는 비닐양은 줄지 않았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비닐이 줄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니 범인은 바로 포장재였다. 시장 장 보기로 조금이나마 가능했던 신선 식품 구입 시 비닐 쓰지 않기와는 달리, 비닐 안 쓴 가공 식품 구입은 아예 불가능하다.

봉지라면을 예로 들어 보자면, 보통 묶음 형태로 구입하는 5개입 라면의 경우 외부 비닐과 라면 각각의 포장, 분말 스프, 건더기 스프 비닐 수를 헤아려보면 최소 16장의 비닐을 사용한다. 이는 라면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아마 각 가정마다 비닐 재활용 쓰레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비닐 포장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비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비닐을 사용한 포장재가 있다. 코팅된 종이다. 케이크 상자, 택배 상자, 상품마다 붙어 있는 가격표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종이에는 어김없이 비닐 코팅이 돼 있다.

기자는 2019년 경, 친환경 유기농 화장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택배 박스가 비닐 코팅지였다. 흔한 택배 박스가 아닌 예쁜 빛깔의 핑크색 박스였지만 코팅이 돼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기분이 상했다. 말로만 친환경을 부르짖으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바로 ‘고객의 소리’에 포장재를 바꿔달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회사로부터 “검토하겠다”는 의례적인 답변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회사에서 보낸 광고 알림에 ‘친환경 포장재’로 바꾼다는 내용이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진작에 그렇게 할 것이지….’

모든 환경 문제가 그렇듯 사실 소비자보다는 기업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비닐 소포장이나 코팅의 경우를 보아도, 기업이 애초에 사용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분리수거하거나 폐기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업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소비자들에게 있다.

요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들의 ‘어택’(attack) 운동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리필이나 재활용에 비협조적인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 폐기물들을 소비자들이 모아 연대 서명과 함께 기업에 되돌려주는 것이다.

‘스마트슈머’(똑똑한 소비자)를 넘어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슈머’, ‘그린슈머’가 대세인 요즘, 비닐 줄이기를 위한 근본적인 노력에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

한 선배가 건네준 손난로와 어머니께서 챙겨 주신 딸기.

■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혼자만의 도전이라 생각했지만…

응원하며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에

또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선물이야.”

사무실 자리에 앉아 온몸을 담요로 꽁꽁 두르고 있을 때였다. 출근길 자전거를 타며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는데, 한 선배가 다가와 선물을 건넸다. 손난로였다. 선배는 이렇게 영하의 날씨에는 자전거를 안 타면 좋은데, 그래도 사순 시기 도전 중이라 꼭 타야 한다면 손난로는 “필수품이야, 필수품”이라고 했다.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후배를 걱정하는 선배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그때뿐만이 아니다. 사순 시기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를 하며 나는 혼자만의 도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늘 혼자가 아니었다. 지켜보는 가족과 직장 동료, 지인들은 매일같이 나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함께하고 있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지 않는 날, 자전거 타기 대신 1시간 걷기를 하기 싫어 꾸물거리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힘내서 얼른 다녀오라” 하시며 싱싱한 딸기를 씻어 내주시고, 출퇴근길 직장 동료들은 “사순 얼마나 남았죠? 마음으로나마 함께 할게요.”, “힘들 텐데 뭐라도 마시고 갈래요?”, “안전모 쓰고 보호대도 꼭 하죠?”, “조심히 가세요~”라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사순 시기 알차게 보내는 걸 보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라며 도전에 힘을 실어 주는 사람도 있고, “운전하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이 보이길래 ‘혹시?’ 했는데 진짜 선배였네요!”라며 군중 속 자전거 타는 선배를 발견한 기쁨을 표하는 후배도 있다. 심지어 한 지인은 “따릉이는 무거워서 타기가 너무 힘들 것 같은데”라며 자신의 아끼는 전기 자전거를 빌려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의 응원을 들을 때마다 사람은 혼자이지만, 결코 혼자일 수 없다는 점을 깊이 깨닫는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시편 133,1)라는 말씀처럼 누구나 혼자 겪어야 할 인내와 고통의 순간들이 있지만, 누군가와 동행할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사람은 또다시 힘을 내 즐겁게 살아간다. 예수님께서도 골고타 언덕을 오르실 때 세 번이나 넘어지셨지만, 그때마다 아들을 믿고 지켜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응원에, 십자가를 함께 진 시몬의 도움에 끝끝내 일어나 다시 걸으셨다. 자신을 믿고 따른 이들과 함께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처럼, 나 역시 오늘도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나를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정진석 추기경이 2019년 11월 20일 저서 「위대한 사명」 발간 기념 인터뷰를 한 뒤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 책 읽고 묵상하기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책 읽기

정 추기경의 담담한 위로 생생하게 떠올라”

책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게 해 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하느님 곁으로 떠난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외할머니’라는 시를 적어 상을 탄 적이 있다. 밤하늘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이 외할머니라는 생각과 외할머니 산소에서 느꼈던 슬픔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표현해 낸 시였다.

이번주에는 그리운 마음을 대신해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삶이 오롯하게 담긴 책 「추기경 정진석」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먼저 손에 쥐느라 미뤄왔던 책이다. 지난달 초 서울 혜화동 주교관에서 공식 일정을 소화하시면서도 아이같이 순수한 얼굴로 맞아 주셨는데,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다.

책을 펴기 전 가만히 앉아 가장 최근 정 추기경을 뵀을 때를 떠올렸다.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된 서상범 주교가 임명 직후 정 추기경을 예방했을 때였다. 눈이 내린 다음날이라 그랬는지 주교관 창문 너머로 바라본 바깥 풍경이 참 하얗고 예뻤다.

그런데 그날 마음속에 더욱 하얗게 자리 잡은 건 정 추기경이 건넨 말들이었다. 서 주교에게 하는 덕담과 위로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속에 알알이 박혔다. 힘들 때까지 힘들어 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위로였고 고민할 수 있을 때까지 고민해 본 사제만이 건넬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뭔가 든든하면서도 울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왜 그리 눈물이 났을까. “봄에 꽃이 피면 군종교구청이 참 예쁘니 초대하겠다”는 서 주교 말에 “약속은 못하지만 서 주교를 위해 하느님께 꼭 기도하겠다”는 정 추기경의 대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스스로를 하느님께 내맡기며 모든 걱정과 근심을 초월한 할아버지가 건넨 담담한 위로가 힘든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일까.

잘 알려진 대로 정 추기경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다. 어쩌면 그도 수많은 책을 읽고 묵상하며 하느님께 한 발 한 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책 읽는 순간에는 세상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혼자 있어도 행복했다. 그런 체험은 처음이었다.”(55쪽)

물론 이번주에도 책을 펴기까지 요일별로 수많은 유혹이 있었다. 스마트폰은 물론 평일에는 결승전을 앞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고 주말에는 막장이라 그런지 더욱 눈이 가는 드라마가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펼쳐질 것이었다.

다행히 주말 드라마는 “재미없다”는 부모님 덕에 무사히 넘기고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했지만, 온가족이 거실에 모여 응원하며 보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은 보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식탁에서 책을 펴 놓고 TV를 힐끔 째려만 보다가 그만 흥겨운 트로트 가락에 눈과 귀를 뺏겼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책에 있다. 정말로!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