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내 삶의 우선순위 / 김옥진

김옥진(비비안나) 수필가
입력일 2021-03-02 수정일 2021-03-02 발행일 2021-03-07 제 323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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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일산으로 이사 온 지도 십 년이 넘어간다. 이후 내게 온 큰 변화는 여러 모임에 나가는 일이 뜸해졌다는 사실이다. 주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여파이기도 하지만 내 일상을 새삼 돌아보며 하고자 했던 일들의 순위를 매겨 본 결과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내 생활의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들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오늘 성당에서 들은 신부님의 강론 제목이 ‘우선순위’였다. 강론의 요지는 이웃을 위한 사랑의 나눔과 실천이 우선순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귀를 기울이다가 언뜻 내 삶의 우선순위 서열을 떠올려 보았다.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요즈음에도 바쁘게 지내고 있는 편이다. 물론 그동안은 직업으로 오로지 학교가 내 생활의 전부인 양 여기며 살아왔기에, 자연, 학교를 상위 서열에 놓고 살아야만 했다. 그러면서 그때는 대가족과 함께 살면서 세 아이들 키우느라 눈을 옆으로 돌릴 틈이 없었다.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하루 종일 떼어놓고 다녀, 그 시절의 내 머릿 속의 제1순위는 아이들이었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보니 아이들은 어느 새 커서 제 갈 길을 다 가 버렸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니 세상에는 학교일만큼 중요하고 값진 일들이 많은 것에 새삼 놀랐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좁은 생각 속에 갇혀 살았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제는 애를 태울 아이들도 떠나고 교직을 벗어난 지도 십 년이 지났다. 그래서 갈등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인생이 또 그렇듯이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나 나를 붙잡는다. 그러나 지금은 내 일의 우선순위를 고민하며 서열을 바꾸고 싶지 않다.

다름 아닌 성당의 여러 직책을 맡아달라는 요구였다. 이것만은 당장 내 일의 순위에서 비켜 있었던 일이었는데 오래 전부터 신자라면 당연히 해야 될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때문인지 그 일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우리 집을 찾아준 손님은 신부님과 교우들이었다. 얼떨결에 구역모임을 우리 집에서 갖게 되었는데 비가 세차게 오는 초복 날, 교우들이 우리 집 거실을 빼곡히 채웠다. 그 자리가 있은 후부터는 신부님과 교우들과의 낯설음이 차츰 가시며 친근감이 들었다. 이후 나에게 본당 단체의 수장을 맡아달라는 요구가 들어왔던 것은 어쩜 내 마음을 그들이 앞서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성당의 직책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리듯 안겨왔다고는 하지만 무의식중에 내 삶의 순위에 속에 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지금도 모르지만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 일대 서열 변화가 온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를 살아가는 데에도 엄연한 순서가 있을 터인데,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당장은 내 순위와는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후에는 더 큰 은총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우치려고 신부님은 오늘 강론을 준비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진정한 이웃사랑 실천을 상위 서열에 놓고, 바쁘게 지낸지도 수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헤아리지 못하고, 내 집 내 일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이제는 누가 보아도 내 인생의 시계 바늘은 황혼을 향해 황급히 달려가고 있다. 무엇을, 어떤 일을 먼저 할 것인가는 신부님의 강론대로 이웃을 위한 일을 우선시 하는 것이 자명하다.

돌아보면 부끄럽긴 해도 나름으로 이웃을 위하는 일에 충실하려고 애쓰며 지내왔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신부님의 강론처럼 이웃을 위한 일이 내 생활의 일 순위가 되는 날이 올 것을 믿는다. ‘네 이웃에게 베푼 것이 곧 나에게 한 것 이니라’.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옥진(비비안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