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하)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3-02 수정일 2021-03-03 발행일 2021-03-07 제 323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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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통해 하느님 사랑 심어
1984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교육 사도직과 선교에 힘써
성소자 늘어나며 거듭 성장

2019년 8월 아시아 관구 평생양성모임 관계자들이 서울 정릉 본원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는 1892년 스페인 부르고스에 학교를 세운 후 1912년 브라질, 1953년 일본 등에 선교사를 파견해 이미 선교 정신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교회 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1954년 12월 비오 12세 교황 승인을 받고 이름을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수녀회’에서 지금의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로 변경했다.

일본 진출 후 30년이 흐른 1983년, 일본 공동체를 방문한 총장 카르멘 베르날 수녀 및 총 참사회 관계자들은 마침 일본 분원을 찾았던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총장 수녀를 만났고 이때 한국에서의 활동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후 1983년 12월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공식 초대장을 받아 1984년 4월 12일 3명 수녀가 한국 땅을 밟았다.

노틀담 수녀회 기숙사에서 지내며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한 수녀회는 서울 불광동성당 옆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고 1985년 2월 한국의 첫 공동체를 시작했다. 1986년 한국인 세 명이 입회하고 스페인에서 세 명 선교사가 합류하는 등 공동체는 점차 자리를 잡아갔으나, 인력 재정적인 면에서 교육 사도직을 펼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불광동본당 주임 정의채 몬시뇰 도움으로 유치원 교육을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성소자가 생기며 수녀회는 양성소 설립의 시급함을 느끼고 1989년 서울 정릉에 수련소를 마련해 회원 양성과 여대생 기숙사로 활용했으며 1995년 첫 한국인 수녀의 종신서원식을 거행했다.

사도직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서울 불광동본당 유치원 졸업생 대상으로 토요학교를 개설하는가 하면 방과 후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도 시선을 돌려 정릉 수녀원 인근에서 공부방을 시작했다. 또 지방에서 온 여대생 기숙사로 쓰던 수녀원의 공간을 일부 개조해 어린이집을 열었다. 2000년 의정부교구에 첫 공동체를 마련했으며 2012년 수원교구에도 진출했다.

수녀회 선교 정신에 따라 1990년대 말부터 일본과 필리핀에 회원을 파견한 한국공동체는 일본, 필리핀, 한국이 아시아 관구를 형성하고 한국인 회원 수가 늘어나자 더 많은 한국 회원들을 외국으로 보냈다. 2021년 현재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페인에서 11명 수녀가 선교 중이다.

25년간 운영한 서울 정릉 여대생 기숙사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2014년 청소녀 양육 미혼모와 학교 밖 위기 청소녀들을 위한 자오나(자캐오가 오른 나무) 학교로 탈바꿈했다. 동시에 수녀회는 ‘자오나 청소년센터’를 등록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가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싹을 틔운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는 각 시대 환경 안에서 만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교육을 통해 돕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