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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미소와 사랑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1-02-23 수정일 2021-02-23 발행일 2021-02-28 제 323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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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편안하게 줄 수 있는 사랑
사람과 사람 간 결속력 강화시켜
미소 많을수록 공동체 건강해져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바빠서 봉사도 못하는데 고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 중 돈 한 푼 안 들이고 아주 편하게 줄 수 있는 사랑은 미소입니다. 미소는 참으로 사람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편안하게 해 줍니다.

‘미소’ 그러면 대부분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신비한 미소는 성모님의 미소라고 합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하면 성모님 미소는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미소는 참으로 신비합니다. 여행 중 낯선 길을 가다가 마주친 사람이 보여 주는 미소는 피곤함을 덜어 주고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미소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소는 인간 진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미소가 사람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비언어적 방법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미소 짓는 사람을 만나면 경계심과 적대감을 갖지 않고 긴장을 풀고 편안해 합니다. 적개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 중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미소란 것입니다. 그래서 미소를 감정적인 ‘하이잭’(hijack, 본래 의미는 ‘납치’)이라고도 합니다. 특정 상황의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힘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주 미소 지으며 이 미소가 사람들을 한배에 탄 듯한 느낌을 갖게 해 줍니다. 공동체가 어떤 상태인가 하는 것은 그 공동체 사람들이 얼마나 미소를 잘 짓는가로 알 수 있다는 것은 허언이 아닙니다. 공동체원 간 미소가 많으면 건강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본당 신부님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으면 본당에 신자들이 늘 머물고 기도합니다. 본당 신부님이 인상 쓰고 짜증이 많으면 그 본당은 사막처럼 돼 버립니다. 미소의 힘은 그만큼 대단합니다.

몇 년 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일입니다. 일정에 쫓겨 미사 할 성당에 좀 늦게 도착했는데 그곳 관리인이 온갖 인상을 다 쓰며 자기나라 말로 무언가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심지어 방문한 사람들을 향해 타박을 주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인상 쓴 입에서 나오는 말의 발음이 욕 비슷해 기분이 아주 상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따라 나오면서 또 자기나라 말로 욕하는 것 같았습니다. 화가 났지만 한국 신부로서 체면이 있는지라 환하게 미소 지으며 우리말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잘 있어라 자식아! 얼굴 펴고 살아라! 우거지야!’라고. 근데 그 말을 알아들은 듯 인상을 더 쓰고 화를 내더군요. 아무리 미소를 지어도 욕은 알아듣나 봅니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미소가 통하지 않습니다.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사기꾼이라고 한다니 러시아에서는 미소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소는 만국 공통어이니 마음껏 미소 지으며 사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