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일상의 소중함 / 이주현

이주현(헬레나·제1대리구 서천동본당)
입력일 2021-02-23 수정일 2021-02-23 발행일 2021-02-28 제 323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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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중고등부 교리교사를 시작한 지 벌써 햇수로 6년 차가 됐다. 보통은 세례 받은 지 3년이 지나야 교리교사를 할 수 있는데, 신설 본당이었던 우리 본당은 내가 세례를 받은 직후 중고등부가 생겼다. 당시 나는 본당에서 희귀했던 ‘청년’이라는 이유로 신입 교사로 활동하게 됐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신앙생활이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미사 시간에는 청년 성가를 부르고 오르간이 아닌 건반을 치고 기타도 함께 배우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았다.

한번은 피정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내가 아이들 11명을 데리고 여름 피정을 떠났을 때였다. 본당별로 인솔 교사가 식사 전후 기도를 하라고 하셨는데, 당시 나는 식사 후 기도도 외우지 못해 아이들에게 급하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또 밤에 초를 켜놓고 성가를 부르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미사 전 교사 회합, 아이들 교리부터 미사 후 간식 시간까지 챙기려면 토요일 온 하루는 성당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그래도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힘이 넘쳤다. 토요일은 성당에 묶인 몸이라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여행은 다 포기해야 했지만, 그런 것들이 전혀 아쉽지 않을 만큼 나는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점점 초반의 열정은 식어가고 교사 활동을 조금 쉬어야 하나 고민이 들던 차에 작년 2월 중고등부 미사가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됐다. 처음에는 이렇게 장기전이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오랜만의 휴가를 받은 것처럼 홀가분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초반의 예상과는 달리 점점 길어지는 코로나19 상황과 함께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이 얼마나 나에게 큰 기쁨이고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역할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이들이 나를 주님께 이끌어주는 등불이었다.

1년 동안 중단되었던 중고등부 미사가 지난 주부터 재개됐다.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본당 수용인원의 10%만 미사 참례가 가능해서 모든 아이가 다 참석하진 못했지만 조촐하게나마 얼굴 마주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못 본 사이 한 뼘씩은 훌쩍 자란 모습이 대견하고 예쁘다. 또 하느님과 멀어지지 않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사를 봉헌하려는 마음이 고맙다.

코로나19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지만 그 시간 통해 평소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의 소중함과 나에게 주어진 교사로서의 소임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감사하게 됐다.

이주현(헬레나·제1대리구 서천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