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웃음과 영성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1-02-16 수정일 2021-02-16 발행일 2021-02-21 제 323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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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인색하고 엄숙한 우리 교회
가까이 다가서기 힘든 모습보다는
신자들 함께하는 분위기 만들어야

우리 교회는 웃음에 아주 인색합니다. 성당에서 신자들이 웃고 떠들면 야단치는 신부님들이 적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 보기 부끄럽지 않느냐고 난리치는 진상 신부님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신부님들은 본인도 웃지 않고 늘 근엄하다 못해 우거지상을 하고 다닙니다.

이런 신부님들이 사목하는 성당은 이상하게도 공통점을 갖습니다. 성당 안이 영안실처럼 어둡고 썰렁하고 신자들은 마치 초상집 강아지들처럼 우울해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아니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생기발랄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께서도 지겨워하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엄숙하다 못해 신경증적인 면모까지 보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사는 것입니다. 웃음이 영성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하면 보수적인 분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하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웃음은 영성과 깊은 함수관계를 갖습니다.

웃음이 적으면 학식이나 지위가 높아도 영성은 바닥이고 웃음이 많을수록 영성이 깊습니다. 웃음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마치 메마른 사막처럼 황폐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삭막한 곳에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듯이 아무도 다가가지 않습니다. 웃음이 많은 사람들은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으려고 함께 놀고 싶어 가까이하려고 합니다.

생전에 신자들을 쥐 잡듯이 잡으면서 신앙훈련(?)을 혹독하게 시킨 신부가 죽어서 천당에 입성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천당에 들어오면 성대한 환영을 받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베드로 사도로부터 달랑 아파트 열쇠 하나만 받았을 뿐 주님은 얼굴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섭섭하다 못해 화가 난 신부가 주님 집에 항의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 집 앞에 웬 여자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냐고 묻자, 여자들은 “우리는 하루 종일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한 여인들인데, 이렇게 죽어서도 주님을 찾는데 주님께서 만나 주질 않으신다”고 답했습니다.

신부가 문지기인 베드로 사도에게 항의하자 베드로 사도가 그 신부의 귀를 잡아끌더니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너 같으면 하루 종일 누가 찾으면 만나 주겠냐? 그리고 너 같이 성질이 지랄 같고 웃음기 없는 놈하고 누가 놀아 주겠냐?”

코미디언 고(故) 구봉서 선생께서 그러셨지요. “웃으면 복이 온다”고요. 맞습니다. 웃으면 복과 친구와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포르투갈 파티마 성물방지기 수녀님이 기억납니다. 순례객인 우리 신자분들이 미소를 머금은 그 수녀님 곁에서 손을 잡고 떠날 줄 몰랐습니다.

웃음은 모든 이의 마음을 열어 줍니다. 웃음은 그 사람의 영성의 깊이가 어떠한지 가늠케 해 줍니다. 노상 우거지상을 하면 천당에 가서도 매일 우거짓국만 먹을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