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도전을 시작하며

입력일 2021-02-16 수정일 2021-02-16 발행일 2021-02-21 제 3232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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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가운데 사순 시기를 맞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기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되새기며 기도와 회개, 절제와 금욕을 실천한다. 본지는 부활의 희망으로 나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참회 행위들을 제안한다. 세 명의 기자들이 편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평소 지키지 못했던 것을 실천하는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시즌4에 도전한다! 각자 비닐 안 쓰기, 대중교통과 자동차 이용을 자제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책 읽고 묵상하기를 도전 과제로 정했다. 거룩하면서도 험난한 40일의 여정을 소개한다!

■ 비닐 안 쓰기

“평소처럼 장바구니 쓰면 되지 싶었는데

비닐 포장 안 된 물품 찾는게 더 어려워”

혹자는 석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거친 지금을 ‘플라스틱 기’라고 일컫는다.

1909년 미국 발명가 베이클랜드가 특허를 낸 합성수지 플라스틱을 시작으로 이후 플라스틱 개발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20세기 기적의 물질로 손꼽혔던 플라스틱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애물단지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비닐’이 있다.

서울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한동안 비닐과 스티로폼 수거가 안 돼 불편을 겪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비닐은 돈이 안 되는 재활용품이라 재활용 업체에서도 수거를 꺼리는데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동남아 등 폐기물 수출 길까지 막히자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비닐류 수거가 안 되자 비닐류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라고 했다. 비닐은 매립을 하면 수백 년 동안 썩지 않고, 소각을 하면 유해물질이 발생해 처리하기가 난감하다.

올해 사순 시기 실천을 시작하면서 ‘비닐 안 쓰기’에 자원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평소에 하기 어려웠던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인내와 극기를 배우고자 하는데 ‘비닐 안 쓰기’야 말로 ‘즐거운 불편함’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비닐 안 쓰기’를 시작할 때 마음은 가벼웠다. 기자는 평소 장바구니를 항상 갖고 다니며, 늘 장바구니 사용을 해 왔기에 장 볼 때 비닐 안 쓰기쯤이야 ‘식은 죽 먹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판단 착오였음이 밝혀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닐 안 쓰기’를 결심하자 도처에 비닐만 보였다. 우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용하는 대형 마트 온라인 장보기부터 멈춰야 했다. 대형 마트 물품 포장은 큰 종이봉투와 비닐봉지를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장을 보기 어려워지자 퇴근 길, 집 근처 친환경 생활협동조합 매장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감자, 고구마, 무 같은 채소류들은 박스에 담아 놓고 각자 봉지나 망을 지참해 담아가는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기대를 갖고 찾았던 이곳에서 기자는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포장되어 있지 않은 물품은 소수인데 비해 대부분의 채소, 과일, 고기류는 별도로 비닐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닐 포장 안 된 품목들만 사자면 거의 저녁상을 차릴 수 없는 수준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포장된 제품들을 살 수밖에 없었다.

아, 비닐 안 쓰기의 길은 정녕 멀고도 험한 것인가.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

■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주님 수난 동참하는 육체적 행위이며

나와 세상 정화할 수 있는 실천 사항”

‘부작위.’(不作爲)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다. 내게는 그동안 ‘자전거로 출퇴근하기’가 그랬다.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지구촌 시민으로서도 대중교통이나 승용차가 아닌 자전거 이용이 나에게도, 사회에도 더 유익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더 편하고 싶었고, 더 쉬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이번 사순 시기 기획안을 내고 회의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겠습니다!”

무언가에 끌린 듯했지만,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모태 신앙인이자 가톨릭신문 기자로서 언제 한번 제대로 사순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올해부터는 적극적으로 주님 수난과 고통에 동참하고 싶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실 때까지 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하느님 자녀로서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처럼 나 역시 조금 힘들고 괴롭더라도 주님 뜻에 맞갖은 길을 가고 싶었다.

이렇게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에 도전하는 이유는 주님 수난과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육체적 행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는 분명 육체적으로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나 자신도, 사회도 정화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실천 사항이다. 죽음으로써 부활하실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나를 자연에 노출함으로써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고, 대중교통이나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불가피했던 탄소 배출을 줄임으로써 맑은 환경을 만드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는 ‘코로나 우울’ 예방법이 될 수도 있고, 대중교통에서의 감염 우려를 덜어 줄 수도 있는 좋은 ‘사순 시기 보내기’ 방법이다.

때문에 이번 사순 시기, 나는 그간 부작위해 왔던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를 실천한다. 먼 거리는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겠지만, 사무실로 출퇴근하거나 가까운 거리를 다닐 때는 꼭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걷고,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1시간씩 걸을 예정이다. 날씨가 궂어 자전거를 타기도, 걷기도 어려운 날에는 1시간 동안 초를 켜 놓고 기도할 생각이다.

코로나19 상황에 지내는 사순 시기인 만큼, 독자분들도 기자와 함께 자전거로 출퇴근하면 어떨까? 거리가 멀어 어렵다면 대중교통·승용차 이용하기 대신 자전거 타기·걷기로 주님 수난과 고통을 느끼며 부활을 기다리자는 제안이다. 성경에서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 책 읽고 묵상하기

“스마트폰 유혹 뿌리치고 책을 들었다

가슴에 꽂히는 문장 만나 치유되기도”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하고 그 노인은 말했다.”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집 「일인칭 단수」 ‘크림’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독서가 그렇다. 시작하기는 어려운데 시작하고 나면 얻는 게 참 많다. 가슴에 꽂히는 문장을 만날 때도 있고 과거의 한 순간이 치유되기도 하며 이해가 안 됐던 상황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항상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아니겠는가. 활자의 숲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유혹을 제쳐야 한다. 내 손 안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와 미국 드라마 등이 넘쳐나는 든든한 스마트폰이 있다. 이게 아니라도 모바일 속 쇼핑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SNS로 공유하는 이웃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해마다 사순 시기에 많은 신자들이 절제와 희생을 실천한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생활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스크린 의존도가 높아진 이번 사순에는 이런 유혹을 제치고 독서하며 묵상하는 시간을 늘려 보기로 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치들을 되새기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고자 한다.

먼저 지난 한 달간의 스크린 타임(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돌아본다. 한 주 동안 모바일 화면을 들여다보는 데 무려 31시간 10분, 일평균 4시간 27분을 쓴 적도 있다. 물론 업무용을 포함해 내비게이션, 금융거래 등 꼭 필요한 기능에 사용한 시간도 많았지만 절반 이상이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시간이다.

요즘 소셜 미디어에서는 마치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처럼 취향 맞는 이들이 골라 온 옷부터 시작해 건강식품, 화장품, 주방용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누워서 쇼핑할 수 있다. 얼마나 근사한가! 그래선지 특정 SNS에만 평균적으로 한 주에 10시간 가까이를 할애했다. 최근에는 푹 빠진 미국 드라마가 있어 엔터테인먼트에 사용하는 시간도 부쩍 늘었다. 이런 시간을 줄여 책을 펴기로 다짐한다.

돌아보면 여행지에서 스마트폰은 주로 카메라 역할을 한다. 평소처럼 웹서핑을 하지도, 소셜 미디어 세상에 빠져 있지도 않으며 온라인으로 쇼핑할 시간은 더욱 없다. 이번 사순은 하느님 나라 여행자처럼 혹은 좀 더 현실적으로 바티칸에 여행 온 것처럼 살아 보기로 한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함께 풍성한 열매 맺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