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친구여 / 곽명규

곽명규(미카엘) 시인·소설가
입력일 2021-02-16 수정일 2021-02-16 발행일 2021-02-21 제 323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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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자네가 물었었지. 왜 가톨릭 신자가 되었느냐고. 십 년도 훨씬 넘은 이 질문이 새해 들어 불쑥 떠오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그때 답을 하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이 아닐는지.

기억을 까마득한 옛날로 돌려 보아야겠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이었지.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2학년 표지를 단 얌전한 상급생 하나가 교실에 들어와 말없이 칠판 한쪽 끝에 세로로 무어라고 써 놓고는 그냥 돌아서 나갔는데, 그의 조용한 뒷모습이 웬일인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네. 칠판에는 가톨릭 교리반의 개강 시간과 장소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는데, 나는 단순히 그 감동에 이끌려 혼자 명동성당의 교리반을 찾아가게 되었지. 그때 머릿속에선 한 마디 말이 떠돌았었네. “가톨릭에 무언가 있는 것 같아”라고.

교리반은 젊은 P 신부님이 맡으셨는데 양복을 빼입고 다리를 꼬고 앉은 모습이 강의의 내용보다 더 멋져 보였었지. 그러나 나는 곧 문제에 부딪혔다네. 교리 문답을 순서대로 다 외우라고 했는데, 시험 때도 외우는 것을 싫어하던 나로서는 무조건 암기하는 교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야. 두 주일 만에 슬쩍 그만두고 말았지.

그 뒤로 나는 종교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네. 스스로 휴머니스트라고 자처하면서, 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삼고 우쭐대며, 때로는 신의 존재를 감히 부정하는 말도 내뱉곤 했었지.

대학에 가서도 달라질 일은 없었어. 그러나 계엄령으로 인해 황당하게 길었던 여름방학과 쓸쓸한 겨울방학을 지내며 외로움과 무력감으로 마음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던 것 같아.

그 위에 내 친구 Y의 덕도 있었을 걸세. 한 번은 내가 좀 과장된 무신론을 펼친 적이 있었는데, Y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지. 사실 나는 종교학을 전공하는 그에게서 멋진 반론을 듣고 싶었던 것인데, 예상 밖의 반응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네. 그 뒤로 다시는 설익은 무신론을 입에 올리지 못했지. 그 친구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말일세.

그러나 그 뒤로도 방황은 계속되었지.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게 되면서는 흔히 그렇듯 나 또한 아이들만이 내 미래이자 현재라고 여겼지. 그러나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기쁨 속에 은근히 두려움이 자라나게 되었다네.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게 되겠지. 그리고 아이들도 나처럼 똑같이…’

점점 더 늘어나는 불안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말하기에 이르렀다네. “이제부터 우리는 가톨릭이다”라고. 옛날 그 P 신부님이 하신 말씀에서 인용했던 거지.

그러나 가족이 모두 함께 세례를 받던 날, 나는 꽃다발만 안겨 주고 사진만 찍어 주었을 뿐이었다네. 나 자신은 세례를 받을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고 생각했던 거야.

내가 세례를 받기까지는 그로부터 10년이 더 걸렸다네. 물론 ‘준비’가 끝나서 받은 것은 아니었지. 만일 늦어지는 만큼 준비가 더 되는 것이라면 아마 오늘까지도 준비만 계속하고 있었을 걸세.

십여 년 전 자네의 질문에 답을 했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네. 가톨릭에는 무언가 있는 것 같아서 그걸 찾아보려고 신자가 됐노라고 말했다면 자네는 또 물었겠지. 그럼 그걸 찾았느냐고. 그리고 찾은 것을 보여 달라고 했겠지. 그러면 나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새해를 맞아 60년 전의 그 상급생과 대학 때 친구 Y를 떠올려 보네. 그들처럼 말이 아닌 내 행동에 무언가가 담겨서 자네가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면서 말일세.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곽명규(미카엘)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