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하실 수 있습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3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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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
제1독서(레위 13,1-2,44-46) 제2독서(1코린 10,31-11,1) 복음(마르 1,40-45)
예상치 못한 고난에 시달리고 삶의 고통에 힘든 세상이어도 주님은 연민으로 감싸시는 분
항상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내길

청천벽력이었을 겁니다. 어느 날, 자신의 몸에 나병의 징후가 드러났을 때, 기절초풍할 만큼 놀랐을 겁니다. 얼마나 당황했을지, 얼마나 기막혔을지, 느닷없이 몰아친 상황에 나락으로 추락한 스스로의 처지에 어안이 벙벙했을 겁니다. 용납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이오”라 외치며 어느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현실에 절망했을 겁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질긴 목숨을 원망했을 것도 같습니다. “왜 아니 그랬을까요? 어찌 그리 생각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기막힌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지난 일 년, 우리가 살아낸 시간들과 꼭 닮았다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전혀 예상한 바 없던 상황에 어리둥절하고 예상할 수 없는 앞날에 마음 졸이기 일쑤이니까요.

더불어, 함께, 부대끼며 지내는 일마저 ‘금기’가 된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우울감에 시달리다 드디어 마음에 뾰족뾰족 날이 서 있게 됐다는 심리학자의 해석이 아니라도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은 깊습니다. 들쭉날쭉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매일이 생경할 따름입니다.

‘나병을 치유하는 예수’(12세기),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산타 마리아 누 오바 디 몬 레알 레 대성당 모자이크 일부

저는 이 강론을 “기쁜 설날을 보내셨나요?”라는 인사로 시작하려 했습니다. 많은 것을 삼갈 수밖에 없는 연휴였지만 그래도 ‘설날’을 보낸 첫 주일이니까요. 그런데 이러고 있네요.

지금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 그날 나병환자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라 싶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바로 오늘, 이 말씀을 들려주시며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주님 음성이 따뜻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나병환자는 인간의 근본적 권리마저 박탈당해야 했습니다. 그 몸서리치는 상황에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사태에 힘없이 무너지고 있는 우리 심정이라 싶습니다. 매일 매일을 혼돈 속에 지내는 우리와 꼭 닮았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다가간 그의 언어가 겸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고자 하시면……”

예상할 수 없는 고난으로 삶이 문드러진 인간의 고백이 이렇게 낮고 순수했습니다. 때문에 주님의 응답이 이리 따스웠던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에는 수많은 종교가 공존합니다. 일부 종교학자들은 많은 종교가 쉬이 수용되는 이유를 한국에 뿌리를 내린 종교는 여지없이 ‘기복 신앙’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데요. ‘믿음은 곧 복 받는’ 것으로 변질되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가톨릭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를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이한 현상에 마음이 쏠려서 기적에 솔깃하여 몰려다니니 말입니다. 이야말로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훼방하는 못난 짓이니 말입니다. 주님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는 행태이니 말입니다. 다시 강조해드립니다. 기적이 그분 복음의 전부였다면 그분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온 세상을 개벽시키셨을 것이라는 걸 진정 모르십니까? 세상의 고통과 고난이 믿음과 사랑의 걸림돌이라면 깡그리 없애실 수 있다는 걸 참으로 모르십니까?

복음은 삶의 고통을 없애주는 비결이 아니며 고난을 면제받는 도구가 아님을 정말 잊으셨습니까? 고작 구일기도를 하면 “무슨 소원이든 다 이루어진다”거나 “어느 성지의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며 쫓아나서는 맹신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어리석은 행위가 진리를 상하게 합니다. 그분의 뜻을 변질시킵니다. 진정 우리를 살리고자 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시한 믿음이 그분을 “외딴곳”으로 내몰아 갑니다. 그분께서 몸소 세우신 교회의 가르침을 묵살하고 무시하는 헛된 행위를 꼼꼼히 살펴야 할 이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나 같은 죄인’이 그분의 은총으로 구원된 사실입니다. 놀랍고 기이한 은총으로 죄인인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승격된 사건입니다. 무수한 허물을 지닌 내가 그분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도구로 변화된 일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때문에 그분의 자녀는 복음만 자랑합니다. 땅의 것에 얽매여 ‘더 높아지고’ ‘더 누리는’ 차원을 넘어 ‘참’ 행복을 기쁘게 누립니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변화된 자신을 증거합니다. 믿음으로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겸손된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힘든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날처럼 “하고자 하니…” 라는 주님의 연민이 세상을 살리고 있습니다. 헤아릴 길 없는 그 사랑으로 지금 세상이 지탱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순수한 믿음과 절실하고 겸손한 기도가 주님의 자비를 이끌어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왜?”라고 묻지 않고 “어째서?”라고 따지지 않으며 오직 당신의 뜻에 수긍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믿음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삶을 힘들게 하는 거센 파도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주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하는 순명의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새로이 선물 받은 신축년의 오늘, 주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약속에 의탁하여 지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살아냅시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