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3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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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

제1독서(욥 7,1-4,6-71) 제2독서(코린 9,16-19,22-23) 복음(마르 1,29-39)
마귀 들린 이들은 자유로운 삶을 상실하고 더러운 영에 소유돼
그들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행위는 하느님 현존 드러내는 표징
기도와 복음 선포에 담긴 힘으로, 주님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

“나의 의무는 이 장면을 보고 감탄하거나 놀라는 것에 멈추지 않고, 이 의미가 무엇인지 더욱 명확히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로버트 프로스트)

1월 둘째 주에 복음서를 주제로 화상 실시간 강의를 마치며 나눔을 했는데 한 학생이 “저는 복음서에 대한 설교를 너무 많이 들어 복음서는 싫증이 났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습관적 경청이 아니라 싱싱하게 체험하며 살고 있을까요?

■ 복음의 맥락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첫 날을 마무리하는 단락입니다. 마르코는 1장 39절에서 예수님의 선교 활동을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고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예수님에게 병자 치유, 특히 마귀 추방은 복음 선포와 별개가 아니라 거기에 수반되는 중요한 활동입니다. 예수님은 이 첫날 목표와 일정을 매일 한결같이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제1독서 욥의 고통스런 기도는 병자 치유,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고백은 복음 선포의 관점에서 모두 복음서 본문을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마귀, 마귀 들린 이

오늘 복음에 ‘마귀’라는 용어가 네 번 나옵니다. 성경 번역본과 서적마다 용어가 달라 혼선을 가져오는데 천사와 케루빔이 다르듯이 사탄과 마귀도 다릅니다. 사탄(히브리어로 ‘사탄’, 그리스어로 ‘디아볼로’)은 마귀들의 두목에 해당합니다.

신약에서 마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다이모니온’인데 의미가 광범위한 ‘다이몬’에서 유래합니다. 다이몬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중간 존재, 자연신, 또는 내면 안의 영적인 것, 양심의 목소리(소크라테스) 등 여러 가지로 해석했습니다.

요약하면 다이모니온의 원래 의미는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보통 인간의 체험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체험, 인간의 행동, 현상을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에는 마귀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염소 귀신’처럼 마귀, 귀신이라는 말이 아주 가끔 나오는데 이스라엘 신앙이 아니라 이교 세계와 신화의 잔재입니다. 따라서 구약에는 마귀 축출에 대한 내용도 토빗기(3,8)를 제외하고는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과 달리 예수님 시대 전부터 후기 유다교에 많은 영의 존재를 믿은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영향으로 마귀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꽃피게 됐습니다. 유명한 랍비 요하난(180~279)은 어느 갈릴리 도시에 남자 귀신 300명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열병, 간질, 심지어는 술주정도 마귀 소행으로 돌렸고 질병에 해당하는 마귀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 초대교회도 동시대인들의 이런 믿음을 공유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 들린 이’는 ‘더러운 영이 들린 이’와 같은 부류입니다. 마르코는 가끔 두 용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마르코의 맥락 안에서 두 용어를 굳이 구분하자면 ‘더러운 영’은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다가 구체적인 상황, 곧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하느님의 거룩한 영과 반대되는 더러운 영에 소유된 상태를 드러냅니다.

회당 안의 더러운 영 들린 이가 갑자기 복수형으로 “저희를 멸망시키러”(마르 1,24) 왔느냐고 예수님께 대적합니다. 그는 율법학자들처럼 예수님 가르침에 무감각하고 적대적으로 대항하게 만드는 가치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마귀 들린 이는 그 상태가 항상 지속적이며 명확하게 눈에 보이고 삶의 자유를 상실한 사람입니다.

팔마 일 죠바네 ‘병자들을 치유하는 그리스도’

■ 마귀를 어떻게 쫓아내는가?

복잡하게 보이는 이런 용어 구분보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마귀를 쫓아냈는가입니다. ‘쫓아내다’라는 동사는 마귀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보내 버리다, 거부하다, 쫓아내다, 도망치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교 세계와 유다교 세계는 마귀들을 몰아낼 때 마술이나 주문, 다른 마법 의식으로 쫓아냈습니다. 탈무드에도 마귀들을 쫓아내는 다양한 ‘방법’(레시피)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그분의 권위 있는 말씀만으로 마귀를 쫓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 말씀과 관련된 여러 동사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마귀를 ‘꾸짖고’, “조용히 하여라, 나가라”고 소리치고, “다시 들어오지 말라”고 명령하며 마귀의 활동을 즉시 차단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귀와는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없습니다. 마귀가 예수님 말씀에 항복하거나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 아들로서 하느님의 주권을 가진 분, 메시아라는 표징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같은 구약의 예언자들도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그들의 말과 행위 안에 하느님이 현존한다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산발적인 어떤 개입에 국한되지 않고 예수님 사명의 핵심이며 그분 직무의 일상적 행사였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들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그들이 고통과 죽음을 겪어야 하는 하느님 아들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과 권력을 가진 다윗의 아들 메시아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지식이 널리 퍼지면 다른 사람을 감염시켜 예수님 사명이 더욱 힘들어집니다.

■ 기도, 마귀 축출의 원동력

특히 제 시선을 끄는 것은 예수님이 마귀를 몰아내고 ‘새벽 아직 캄캄할 때’(마르 1,35)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하느님 아들 예수님도 여느 인간처럼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고 그분 존재의 뿌리인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매일 양분을 얻지 않으면 마귀에 억눌린 사람들을 해방시킬 힘을 상실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내밀한 친교를 나누는 순간인 기도의 힘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복음 선포자,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에만 머물지 않고 복음 선포에 담긴 힘으로 진정한 치유자,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22)이 됐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으로 오늘도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시편 147,3) 아멘!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