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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범 신임 군종교구장 주교] 인터뷰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16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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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구나’ 걱정 앞서지만 하느님께 의탁하겠습니다”
신학생 때부터 군종교구장까지 ‘군대 네 번 가는 남자’ 된 만큼 누구보다 군사목 잘 아는 목자
‘젊은 한국교회로 가는 원동력’ 군종교구 위상과 중요성 강조
사제단·후원회·민간 본당까지 군복음화 위한 일치와 화합 당부

서상범 신부(서울 대치동본당 주임)가 2월 2일 제4대 군종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서 주교는 1991년 군종장교로 임관해 2012년 육군 대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21년 동안 군사목에 헌신했고 전역 후에도 4년 6개월간 군종교구 총대리를 역임했다. 군종교구에서만 사제 생활의 대부분인 26년을 사목한 서 주교가 제4대 군종교구장 주교로 임명되면서 누구보다 군사목을 잘 아는 성직자가 군종교구장이 됐다는 기대감이 커진다.

서 주교는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때로는 확신에 찬 어조로 주교 임명 소감과 향후 비전을 밝혔다.

서울 대치동본당 성모상 앞에 선 서상범 주교. 서 주교는 “비천한 제가 군종교구장 주교로 임명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주교 직무를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 무거운 직책 하느님께 의탁

서상범 주교는 주교 임명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심정을 묻는 질문에 “비천한 제가 군종교구장 주교로 임명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서 주교는 이사야서 6장 5절 “큰일났구나”라는 구절이 먼저 생각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가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 프리젠테이션으로 미사 시간 중 대치동본당 신자들에게 구약 이사야서를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하느님을 체험하고 부르심을 받으며 했던 말이 이사야 6장 5절에 나오는 ‘큰일났구나’입니다. 저 역시 큰일났다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주교 직무를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서 주교는 신학생 시절 병사로 군복무한 데 이어 1991년 군종장교로 임관했고, 전역 후에는 다시 군종교구 총대리로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를 4년여간 보필했다. 이에 대해 “어찌 보면 네 번째로 군에 들어온 경우가 됐다”며 “무거운 직책을 하느님께 의탁하겠다”고 긴장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 주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소신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사제 성소를 키웠다. 서 주교는 자신이 걸어왔던 어릴 적부터의 신앙과 성직자의 길을 반추하며 “소신학교 시절 쌓은 신앙 훈련이 주교가 되기까지 흔들림 없는 신앙의 뿌리가 됐다”고 회고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복사를 했고 소신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어두운 새벽에 30분씩 걸어서 성당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소신학교는 수도원 같은 곳이었지만 저에게는 익숙한 분위기였습니다. 부모를 떠나 겨울에는 춥기도 하고 식사를 포함해 열악한 여건도 있었지만 주님 안에서의 일치와 극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소신학교 생활은 제가 주교가 되는 데 신앙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서 주교는 소신학교에는 부모 권유로 입학했지만 대신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께서 전적으로 자신에게 진학 여부에 대한 판단을 맡겨 주신 것을 참 고맙게 여긴다면서 “사제의 길은 100% 내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 군종교구는 한국교회가 젊은 교회 되는 원동력

서 주교는 2018년 8월 서울 대치동본당 주임을 맡으며 “서울대교구에서 본당을 맡아 사목하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본당 사목은 보람 있고 행복하면서도 항상 바쁘게 돌아가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군종교구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군과 군종신부들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고 군사목 환경 변화를 늘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군종교구장 주교 직무를 맡게 된 서 주교는 앞으로 군사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낙관적이지는 않았지만 굳은 의지가 전해졌다.

“제가 신학생 시절 병사생활을 할 때는 ‘1인 1종교’ 정책에 의해 좋든 싫든 병사들은 주일에 종교활동을 했고, 내무반(생활관)을 나와 과자라도 하나 먹으려고 성당에 오는 병사들이 많았습니다. 1991년 군종신부가 됐을 때도 종교활동 여건은 좋았습니다. 말 그대로 군대는 선교의 황금어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이들이 종교에 관심을 덜 갖고 취업준비 하느라 바쁘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종교 자율화가 시행되면서 성당에 오고 싶은 병사만 주일미사에 참례하게 되자 점점 군사목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성당에 오고 싶은 병사들마저 성당에 못 오고 있습니다.”

서 주교는 군종교구가 한국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군사목의 중요성을 대치동본당에서 2년 6개월 사목하면서 더욱 명확히 알게 됐다. 군종교구 밖에서 군종교구를 바라보는 가운데 현재 군사목의 위기를 돌파하는 지혜도 간접적으로 찾은 듯했다.

“서울대교구로 복귀하고 나서도 군종신부들과 병사들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대치동본당 청년들이 군에 가게 되면 입대 전 안수하고 격려하면서 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줬고, 성탄 위문품을 만들어서 보냈습니다. 군을 나와서 보니 군종교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점점 고령화 되고 있는 한국교회가 젊은 교회가 되려면 군에 온 많은 젊은이들에게 세례를 줘야 합니다. 젊은 교회로 가는 원동력이 군대와 군종교구입니다.”

■ 올바른 군종 정책 수립에 일조할 것

서 주교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부대 개편, 군병력 감축 등 국방개혁에 따라 군종장교들의 복무 여건도 영향을 받는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 방안을 들려줬다.

“제가 국방부에서 군종장교로 일하던 때에도 군병력 감축이나 부대 개편, 군종장교 감원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군종병과는 타 병과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단순히 전체적인 병력 수가 아니라 군종 활동의 성격과 중요성이 감안될 필요가 있습니다. 군인에게 건강한 육체가 중요하듯 영적, 정신적 요소도 중요합니다. 부대원이 1000명이든 10명이든 미사 봉헌에는 군종신부가 있어야 합니다. 향후 정부 당국과 대화하고 숙고하고 기도하면서 올바른 군종 정책 수립에 저도 일조하겠습니다.”

서상범 주교는 특히 군종교구의 일치와 화합을 강조했다. 군종사제단의 일치뿐만 아니라 군종교구를 위해 활동하는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 군선교단 등과 민간본당까지 서로 협력, 화합해 군복음화라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앞으로 각 교구에서 파견해 주신 군종신부님들이 서로 일치하면서 기쁘게 사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군사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는 군종후원회에 늘 감사드리고 군부대와 군본당, 민간본당이 자매결연을 맺어 군종신부님들이 더 열심히 결실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약력

■1961년 2월 6일 출생

■1976~1979년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1979~1983년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1986~1988년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1988년 2월 12일 사제 수품

■1988년 2월 26일~1990년 2월 23일 서울대교구 암사동본당 보좌

■1990년 2월 23일~1991년 2월 22일 서울대교구 한강본당 보좌

■1991년 2월 14일~2013년 2월 12일 군종 사제

■2001년 6월 7일~2005년 1월 1일 서울대교구 시노드 군종교구 대표

■2005년 2월 15일~2013년 2월 12일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 위원

■2013년 2월 12일~2017년 8월 29일 군종교구 총대리

■2015년 2월 17일~2017년 8월 29일 서울대교구 사제인사위원회 위원

■2017년 8월 29일~2018년 8월 28일 해외 연수

■2018년 8월 28일~현재 서울대교구 대치동본당 주임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