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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천주교인이오?’ 물음에 ‘예!’ 답하는 내가 되길 / 김경숙

김경숙(체칠리아) 시인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2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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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치는 겨울밤의 찬 어둠처럼, 코로나19는 온 세상을 무겁게 터널 속으로 끌고 갔지만 따스한 햇볕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밝은 새해가 막막하게 불어오는 불안을 위로해 주듯, 행복과 평화로운 일상은 다시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몇 해 전 문학 해설사 준비 과정을 공부하던 중, ‘정약용의 시의 세계’에 빠져들다가 우리나라가 처음 예수님을 접한 시점을 만나게 됐다. 200여 년 전 조선에서는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 인물인 이벽 성조,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이승훈, 이총억, 권철신 등이 모여서 실학사상을 토대로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서학에서 들어온 천주교 교리를 접하게 된다. 폐허가 된 천진암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유교 선비들이 불교 암자인 천진암에서 천주교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천진암은 우리나라가 예수님을 처음 알게 했던 태동이며 유교와 불교와 천주교가 사람과 장소와 사상을 합류시킨 발상지가 된 셈이다.

그러나 남존여비 사상이 자리 잡은 그 시대에 인간은 평등하고,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진리의 말씀을 실천한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무수한 사람들이 순교를 했고 최초의 신부님을 탄생시키기까지 100여 년 동안 천주교인들을 박해했던 그 피 흘림의 흔적들이 성지를 통해 남아있다.

신앙이 무엇이기에 예수님을 향한 그 믿음 하나로 “당신은 천주교인이오?”라는 물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라고 답하면서 목숨을 바쳤을까? 과연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어찌 하였을까?

18세기에 천재학자이며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창립할 수 있도록 선구자 역할을 했던 정약용이 가장 존경했던 이벽(1786년 순교)처럼, 권철신(1801년 순교)과 천문학자이며 수학에 정통한 이가환(1801년 순교)처럼, 그리고 정약용의 매형이자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이신 이승훈(1801년 순교)처럼, 정약종(1801년 순교)과 황사영(1801년 순교)처럼, 그리고 생물학자이며 「자산어보」를 남긴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1816년 순교)처럼 나도 순교를 할 수 있었을까?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순교로 한국 교회사의 비망록을 쓰신, 한국 최초의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1846년 순교)처럼 순교를 할 수 있었을까?

그럼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조금씩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도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편도 나와 함께 매일 눈을 뜨면 묵주기도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지금 “당신은 천주교 신자입니까? 예수님을 믿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길, 겸손하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고민하며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삶이 자리할 수 있도록 낮춘 마음을 모아 본다.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기 보다는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나의 부족한 작은 믿음에, 언제나 주님과 함께 계심을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오늘도 가족들에게 기쁘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인사를 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경숙(체칠리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