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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데모와 민주주의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3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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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미국에서 ‘데모’를 한 적이 있다. ‘비폭력 저항’ 등을 배웠던 정의-평화학과 현장학습으로 ‘스쿨 오브 아메리카’(US Army School of the Americas)를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한 것이다. 스쿨 오브 아메리카는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를 도왔다는 악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이 학교 졸업생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군사 쿠데타에 관여하거나 독재정권에 협력했다는 흑역사가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교육받은 일부 ‘엘리트’ 군인들이 라틴아메리카의 ‘공산화’를 막는 데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고국에 참된 자유 민주주의를 전파하지는 못했다.

군사정권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비폭력 시위를 위해 미국 전역의 평화 운동가들이 군사시설이 위치한 남부 조지아의 콜롬버스로 모였다. 매년 약 2만 명 정도가 참가하는 미국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기 프로테스트(Protest, 시위)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이었다. 내가 있던 미네소타를 출발해 1박2일을 꼬박 달렸던 버스에서는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에 의해 살해된 로메로 대주교의 영화가 틀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의 정의와 평화에 관심을 가졌던 학생들이 각자의 소감을 나누는 모습도 꽤 인상적이었다.

젊은 미국인들은 자랑스러운 조국이 라틴아메리카의 슬픔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성찰했고, 참된 민주주의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했다. 사실 집회를 주도하는 ‘스쿨 오브 아메리카 워치’(School of the Americas Watch) 창시자 메리놀회 로이(Roy Bourgeois) 신부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애국자가 아니라는 비난에 대해서 그는 “나는 미국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 의회에서 벌어진 폭력 시위는 오래된 위기에 직면한 자유 민주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제사회 협력보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투표하지 않은 새 대통령을 반대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세상의 평화나 약자들에 대한 연민보다 현실적인 이익을 약속하는 ‘민주주의’와 대통령을 원하는 그들을 보면서 모든 것에서 경제를 우선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보게 된다.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비슷하게 갈라진 우리 모습을 바라보며 민주주의는 결코 저절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을 위한 치열한 성찰, 그리고 우리들의 이기적 본성을 넘어서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의를 향한 인간의 능력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들지만, 부정의(不正義)를 향하는 인간의 경향성은 민주주의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라는 라인홀드 니버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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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