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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코로나19 대유행이 바꾼 명절 풍경 / 이미영

이미영(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3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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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다가옵니다. 예전에는 명절 즈음이면 언론에서 명절증후군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는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전염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고향·친지 방문을 자제하라고 권하는 덕분에, 비대면 명절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섭니다.

최근 한 언론에서는 ‘비대면 설날, 좋으신가요?’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84.1%나 ‘좋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세뱃돈을 못 받게 된 10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대면 설날을 반겼는데, 연령별로 이유가 조금씩 달랐습니다. 20대는 명절 때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취업, 결혼 등과 관련한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어서 좋다’는 응답이 많았고, 기혼 여성은 ‘차례상 차려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어서 좋다’는 응답이, 50대는 ‘세뱃돈을 안 줘도 되어서 좋다’는 응답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습니다.

종합해 보면 명절 스트레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고 보입니다. 하나는 오랜만에 명절에 만난 친척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서로의 사회·경제적 성공 여부를 확인하거나 자랑하는 자리처럼 되면서 느끼게 되는 심리적 부담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일상 근황을 묻고자 안부 인사로 건넨 질문이겠지만, 일종의 표준화된 ‘정상’ 규범을 기준으로 학생이라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청년이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결혼해야 하며,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내 집을 장만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요받거나 평가·비교되는 듯해서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 하나는 주로 기혼 여성들이 겪는 육체적·감정적 스트레스입니다. 요즘 <며느라기>라는 웹드라마가 젊은 층에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 그린 명절 에피소드를 조금 소개해 보겠습니다. 명절 때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남자들은 TV를 보거나 술을 마시며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음식준비와 설거지로 부엌을 나오지 못합니다. 갓 결혼해 첫 명절을 지내는 며느리인 주인공은 허리가 끊어질세라 전을 부치며 힘들어합니다. 시댁에 오기 전 남편이 음식준비를 돕겠다고 약속했을 때, 주인공은 당차게 물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돕는 거냐고. 자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상의 제사인데, 그걸 며느리가 도와주는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냐고요. 하지만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남편은 부엌 근처에 얼씬도 못 했습니다. 부엌일은 여자의 몫이라고 여기는 시댁 분위기에서, 다른 주장으로 ‘가정의 평화’를 깰 수 없어서였습니다. 주인공은 고단한 명절을 겨우 견디고 친정에 가려고 나서지만, 시누이가 곧 올 텐데 더 있다가 가라는, 아니 아예 다음부터 친정은 명절 전에 따로 다녀오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섭섭하고 당황스럽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지쳐서 겨우 쉬려 하는데, 저녁 먹으러 오라는 시어머니의 연락이 오자 다시 밥 차리고 설거지하라는 말처럼 여겨져 주인공은 거부합니다. 요새 저런 집안이 어디 있냐며 며느리 눈치 보여 아무것도 못 시킨다는 반박도 있지만, 방송 후 게시판에 어쩌면 자기 시댁과 똑같냐는 하소연과 공감, 이래서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댓글이 잔뜩 달린 걸 보면 기혼 여성의 명절 스트레스는 비슷해 보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명절증후군 극복 캠페인을 할 정도였던 명절 스트레스가 코로나19 대유행 덕분에 많이 줄어든 것 같으니, 참 웃지 못할 일입니다. 아마 백신과 치료제가 보급되어 이 사태가 안정된 이후에도, 예전처럼 대가족이 모여 스트레스 받는 대화를 나누거나 여자들만 부엌에서 음식 만들고 치우느라 힘든 명절 모습은 급속히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그렇게 바뀌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많은 이들이 불편해하는 명절 풍경은 이번 기회에 사라지고, 온 가족이 즐거울 수 있는 새로운 명절 문화가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직업병인지 모르겠지만, 문득 ‘코로나 이후 명절 풍경만 그렇게 바뀔까? 교회는?’ 하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지금 가장 많이 변화했고 코로나 이후에도 그 흐름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교회의 모습이 있다면, 혹시 불편한 명절 풍경처럼 적극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도전은 아닐까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영(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