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하)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3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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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 위해 헌신하며 선교
현재 65개국 3500여 명 활동
1990년 김하종 신부 입국하며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 시작

지난해 8월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한국지부 회원들이 갱신 서원식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블라띠선교수도회 제공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이하 수도회) 회원들은 ‘선교사’를 자처한다. 한때 비오 11세 교황은 선교사들을 ‘교회의 특별한 사명을 띤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거나, 주님을 잊고 사는 모든 이에게 삶을 바친다. 많은 ‘오블라띠 선교사’들은 그들이 세상 어디에 있든지 찾아가서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 한다.

아울러 수도회는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를 오블라띠 선교사로 여긴다. 성모 마리아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또한 하느님을 본다. 그리고 함께 선교 사명을 수행한다. 선교사로서 회원들의 사명은 ‘십자가로부터 태생된 그리스도의 자녀들을 자애로운 어머니에게 데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설립자 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는 성모 마리아를 ‘선교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설립 이후 수도회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해 활동을 펼친다. 1841년 캐나다에 처음 해외선교사를 파견한 이후 영국, 스리랑카, 미국, 남아공에 계속 선교사를 파견했다.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 성인은 프랑스 내부에서 활동할 인원이 충분치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선교사를 해외에 보냄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이러한 정신은 성인의 사후에도 지속돼 현재 65개국에 3500여 명이 활동하는 국제 수도회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1990년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 초청으로 이뤄진 한국교회와의 인연은 1990년 5월 12일 마우로 콩카르디 신부와 빈첸시오 보로도(한국명 김하종) 신부가 한국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싹을 틔웠다.

이후 이탈리아, 스리랑카, 인도, 필리핀에서 선교사가 계속 파견되면서 한국 선교의 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안에서의 적응 기간을 가진 수도회는 1995년을 기점으로 한국인 회원을 양성했다.

수도회의 한국선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그 관심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 안에서 한 걸음씩 걸어왔다.

수원교구에서 활동하는 수도회는 ‘안나의 집’을 통해 무료급식소와 청소년쉼터, 그룹홈 운영에 기여하는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또 경기도 광주와 평택 지역 이주 사목과 병원 사목 분야에서 고유 카리스마를 펼치는 중이다. 지난해 2020년은 한국 진출 3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지만, 코로나19로 많은 활동이 차질을 빚었다.

한국지부장 류희구 신부는 수도회의 사목 비전에 대해 “사도적 수도 공동체로서 한국교회와 지역 사제들과 협력하며 수도회 카리스마를 지역 교회에 나누고,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 선교와 같은 새로운 사목과 지속적인 회원 양성을 위해 계속 투신하고, 회원들 간 소통과 진정한 신뢰에 집중해 더 깊은 유대 관계를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