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기쁨이 시나이산 돌멩이처럼 많다면 / 고연희

고연희(베로니카) 시인
입력일 2021-01-26 수정일 2021-01-26 발행일 2021-01-31 제 323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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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부터 성경공부를 했다. 성경 지도를 따라가는 이집트 성지순례. 순수한 마음의 눈으로 보고 싶어 떠난 말씀여행이었다.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나타나리라’는 신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 시나이산. 모세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만나 보게 하려고 진지를 시나이산 산기슭에 세웠다고 했다. 시나이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 위에 짙은 구름이 덮이며 연기 자욱한 산에 하느님이 내려 오셔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그 산에서 산양 뿔나팔 소리가 길게 울리거든 올라오너라”는 은총의 말씀. 그 은총으로 2014년 2월 15일 새벽 3시경 어둠을 헤치며 시나이산으로 향했다.

희미한 손전등 불빛 따라 오르고 오르는 내 발길에 돌들이 굴러 내렸다. ‘내 지난 기쁨이 돌멩이처럼 많았다면 시나이산의 돌멩이 굴리러 오지 않았지’라고 생각하며 발밑의 돌만 보는데 “우와~ 별 좀 보세요”하는 소리에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유년의 고향을 생각나게 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들과 눈맞춤 할 여유도 없이 많은 계단 앞에 섰다. 여기서 되돌아 갈 수도 없다. 천국에 오르려면 계단이 있다지 않은가.

여행사에서 모집한 그룹 중 개신교인들이 많았다. 천막 매점 안에서의 통성기도 소리를 멀리하고 밖으로 나와 정상으로 올랐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희끗희끗하게 보였다. 큰 바위들이 많은 정상에는 돌 사이로 나름의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동서양인들이 모여 있었다. 현지에서 빌린 담요가 두터운 외투가 되었다. 지구 같은 둥근 바위를 가슴으로 안고 엎드려도 나름 편했다. 나도 같은 곳으로 눈을 맞췄다.

짙은 어둠의 농도가 옅어지기를 기다리며 ‘빛이 생겨라’는 창세기 구절이 생각났다. 또 ‘땅에는 푸른 움이 돋아 나거라’, ‘그 위에 낟알을 내는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라’ 는 말씀. 그 소리가 이집트에서는 뿌리 내리지 못했나싶다. 푸른 나무들을 보지 못할 만큼 시나이산의 민낯은 생각보다 삭막했다. 그래도 사막여우, 도마뱀 등은 있다고 한다. 어둠이 쉽게 걷히지 않았다. ‘지금 기다리는 게 해가 아닌 다른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일화가 떠올랐다. 그 석판은 깨지지 않았는가. 나는 그 사랑을 깨지지 않는 내 마음에 새겨야겠다.

그동안 읽었던 예수님의 연서를 떠 올린다. 진흙으로 빚은 몸. 숨구멍에 입김을 불어넣자 숨결이 퍼진 몸. 새로 태어나고 싶은 열망이 먹물 허공을 꽉 채웠다. 옅어지는 먹물의 한 곳이 붉어졌다. 어둠 속에서 붉은 공이 ‘퐁’하고 튀어 올랐다. 너무 감동스러워 눈물이 났다. 모세도 이곳에서 해맞이를 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석판을 받았을까?

연서를 다시 보고 싶다. 다 읽지 못한 연서에는 어떤 말이 있는지. 지금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아주 짧다. 이 순간을 긴 사연으로 담고 싶다. 광활하고 야윈 이곳에서 예수님과의 관계로 이루어진 이 만남을 이 글로 남기고 싶다. 어느 행성에서 떨어진 운석일지도 모를 돌멩이. 그 돌을 산 아래로 굴리며 내려오는 길에 먼지가 피었다. “이제 구름 속에서 너에게 나타나리라”고 모세에게 하신 소리. 시나이산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먼지에 가리어졌다. 그 순간을 품고 내려온 산의 끝자락. 머리 위로 붉게 퍼진 햇살이 캐서린 수도원 지붕을 물들였다. 그 안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볼 수 있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연희(베로니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