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온 가족이 축성 생활의 기쁨 누리는 이철희 신부 가정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01-26 수정일 2021-01-27 발행일 2021-01-31 제 323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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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삶, 그 자체가 기쁨”
막내 이웅희 신부의 입회 이후에 각자의 삶에서 느낀 부르심 통해 남매 모두 축성 생활 하기로 다짐
30년 넘게 재속회 삶 사신 부모님과 프란치스코 영성 함께 따르면서 서로의 영성 교류할 수 있어 큰 힘
나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축성된 삶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한 고민의 과정

하느님의 부르심과 은총에 나 자신을 봉헌하면서 축성된 삶을 살아가는 축성 생활. 교회는 해마다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을 ‘축성 생활의 날’로 지내면서 축성 생활의 의미를 되새긴다. 모든 수도자에게 축성 생활은 각별한 것이지만, 지난 1월 18일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자로서 사제품을 받은 이철희 신부는 축성 생활에 남다른 의미를 느낀다. 이 신부의 부모도 재속회원으로서 축성 생활의 길을 걷고 있을 뿐 아니라, 형제 모두가 수도회에 입회해 축성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성 생활의 날을 맞아 온 가족이 축성 생활에 흠뻑 물든 이철희 신부 가정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부르심: 각자, 그러나 함께

2021년은 이철희 신부 가정에 특별한 해다. 지난 1월 18일에 이 신부가 사제로 서품됐을 뿐 아니라, 한 달 후인 2월 6일 이 신부의 누나 이혜영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종신서원을 하기 때문이다. 이미 종신서원을 한 이철희·이웅희 신부(작은형제회)와 함께 형제 모두가 평생을 축성된 이로 살아가는 서원을 하게 된 것이다. 1988년 재속프란치스코회(재속3회원)에 입회한 형제들의 부모 이상문(리노)·최경자(안젤라) 부부까지 모두 프란치스코 영성을 따르는 축성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재속회원으로 살아온 부모의 뜻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철희 신부는 “부모님도 특별히 수도자의 길을 권하시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어릴 적 예비신학생 모임을 다닐 때 교구 사제가 되는 길을 지지해 주셨다”고 답했다.

부르심은 누구의 의지도 아니고 가족들 각자의 삶 안에서 찾아왔다. 이 신부 역시 학생시절에 교구 사제를 꿈꾸기도 했지만, 진로를 바꿔 대학 졸업 후 입사해 사회생활을 했고, 이혜영 수녀도 마찬가지로 사회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2009년 형제 중 막내인 이웅희 신부가 수도회에 입회하기로 했을 때도, 이혜영 수녀와 이철희 신부에게 수도성소는 동생의 일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1년 후 직장생활에 지쳐 잠시 쉬면서 교리신학원을 다니던 이혜영 수녀는 부르심을 깨닫고 축성 생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비슷한 시기 이철희 신부도 사회생활에 대한 고민 속에서 성소의 열망을 느끼고 있었다. 이 신부가 처음부터 축성 생활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시절 생각했던 교구 사제의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신부가 성소를 고민하던 중 한 피정에서 고해성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고해성사를 집전한 사제의 수도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제야 이 신부는 축성 생활을 고민하게 됐고, 그것이 자신의 성소였음을 알게 됐다.

이 신부는 “수도회 입회를 결심했을 당시에 누나도 저도 입회를 하려는지 서로 모르고 있었다”며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가족 모두가 각자의 부르심 안에서 축성 생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22일 이철희 신부의 종신서원식 후 이철희 신부의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혜영 수녀, 이철희 신부(왼쪽에서 두 번째)와 최경자씨, 이상문씨, 이웅희 신부(오른쪽에서 세 번째부터). 이철희 신부 제공

1993년 6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서 이철희 신부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다. 최경자씨(왼쪽부터), 이철희 신부, 이혜영 수녀, 이웅희 신부와 이상문씨(맨 오른쪽). 이철희 신부 제공

1월 18일 이철희 신부가 사제 서품 미사 중 미사 경본을 읽고 있다.이철희 신부 제공 이철희 신부 제공

■ 온 가족이 함께 축성 생활을 한다는 것

이 신부의 가정은 가족 구성원 전체가 축성 생활, 그것도 같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따르는 축성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이상문·최경자 부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본당 공동체 일원으로서 살아가고 있고, 이철희·웅희 신부는 수도자이자 성직자로서 사목현장에 파견돼 활동하고 있다. 이혜영 수녀는 종신서원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각기 모습은 다르지만, 온 가족이 축성 생활을 하는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동반자다. 이상문·최경자 부부는 3남매가 성인이 되기까지 매일 함께 아침·저녁기도를 바치며 신앙을 가르쳐 왔지만, 이제는 수도자인 자녀들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자녀들에게도 부모의 영성을 접한 것이 평신도 신자들을 만나고 축성 생활의 영성을 전하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 또 형제 간 역시 서로 다른 소임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지지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함께 축성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된다.

이철희 신부는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는데, 지금은 함께 축성 생활의 영성에 관해 이야기하게 됐다”며 “부모님은 재속을 통해 받아들이는 영성을, 저희는 수도생활을 통해 받아들이는 영성을 주고받으면서 축성 생활 안에서 서로 교류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 축성 생활의 기쁨

“사람들은 왜 ‘법대로’, ‘원칙대로’ 하는 일에조차 눈물 흘려야만 하는지 회의를 느꼈어요. 사람들이 서로를 잘 대해 주고 행복하게 웃으며 살 수는 없을까 하고요.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하면서 성소를 고민했죠.”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행복한 삶은 어디에 있을까. 이철희 신부 가족은 그 길을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축성된 삶을 사는 데서 찾았다. 축성된 사람들은 축성 생활에 충실함으로써 역사의 주님께 대한 그들의 확고한 신뢰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힘차게 고백한다.(「축성 생활」 63항) 이철희 신부 가정이 축성 생활에 충실함으로써 보여 주는 고백은 다름 아닌 ‘기쁨’이다. 수도자로서, 성직자로서, 그리고 평신도로서 세상 풍파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것은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시선을 늘 하느님 안에 두면서 행복의 길을 찾는 것, 그 자체가 기쁨으로 다가온다.

이상문·최경자 부부는 “가장 좋아하는 영성은 ‘참되고 완전한 기쁨’”이라며 “살면서 많은 어려움과 어두움이 찾아오는데, 사부님(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상황이나 처지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이 오히려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기쁨을 느끼는 것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철희 신부는 “저에게 축성 생활이란 하느님께 어떻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애쓰는 삶인 것 같다”며 “코로나19로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많은 분들이 하느님을 향한 단순하고 소박한 축성 생활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