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매력적인 교회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양승국 신부는 1994년 사제품을 받고 영성신학 전공으로 로마
입력일 2021-01-19 수정일 2021-01-20 발행일 2021-01-24 제 322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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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제1독서 (요나 3,1-5.10)
제2독서 (1코린 7,29-31)
복음 (마르 1,14-20)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밑바닥부터 쇄신하고 세상에 희망 주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

■ 매력적인 존재가 되기 위하여

여든을 훨씬 넘긴 요셉 어르신께서는 요즘 동년배 친구들로부터 미움과 지탄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연세에 비해 너무 젊다는 것입니다. 몇몇 친구들은 이미 오래전 요르단 강을 건너갔습니다. 또 다른 친구들은 뒷방에서 골골하며 누워 있습니다. 하루 온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친구들은 요양원에서 훨체어에 의지한 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 어르신께서는 아직도 팔팔합니다. 당당히 두 발로 여기저기 휘젓고 다닙니다. 트레이드마크인 멋진 구식 자전거를 타고 장도 척척 봐 옵니다. 아직도 꼬질꼬질 하지 않고 깔끔합니다. 비록 백발이지만 머리숱도 풍성, 허리도 꼿꼿, 유머감각도 보통이 아닙니다. 요셉 어르신께서 마을 광장 앞 카페에 등장하시면, 남녀노소 모두 반가운 나머지 박수를 치고 좋아합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매력이 철철 넘쳐 흐릅니다.

그런 소식을 전해들은 요양원 친구들은 “무슨 그 따위 인간이 다 있냐? 하느님께서는 왜 이다지도 불공평하시냐?”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요셉 어르신께 여쭈었습니다. “젊게 사시는 무슨 좋은 비결이라도 있나요?” “물론 있지!” “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당연하지, 이리 따라오게!”

요셉 어르신께서는 당신 서재로 안내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가리켰습니다. 거기에는 당신이 직접 달필로 쓰신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제목은 ‘잘 늙기 위한 7가지 비결’이었습니다. 당신이 여기저기서 전해 들은 것들을 나름 종합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까칠하게 굴지 말기. 2. Stop and Go. 기도와 활동을 적절히 병행하기. 3. ‘여기 아파, 저기 아파’라는 말 입에 담지 말기. 4. 시간도 많은데, 자주 씻고 자주 옷 갈아입기. 5.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 절대 금지. 6. 최고의 얼굴 마사지, 환하게 웃기. 7. 틈나는 대로 유머 감각 발휘하기. 그러나 너무 오버하지는 말기.

공생활 초기, 힘차게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온몸으로 보여 주신 예수님의 모습 역시 참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신선하면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찬란한 광채로 눈부실 지경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발산하시는 강렬한 빛에 매료된 사람들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회심과 사랑 고백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분의 흘러넘치는 매력에 홀딱 반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내팽개치고, 그 자리에서 그분을 따라 나섰습니다.

페데리코 바로치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심’

■ 예수님의 매력 앞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선 제자들

2000년 전 갈릴래아 호숫가 한 작은 마을에서는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을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이 갑자기 마을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식솔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 세세대대로 명맥이 이어져 온 가문을 이어가야 할 사람,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요, 든든한 보루 같은 젊은이들이 동시에 떠나 버렸으니, 마을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제베대오 같은 경우 얼마나 황당했겠는지, 즉시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날도 두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조업 후 얽히고설킨 그물을 손질하고, 타고 나갈 배도 청소하고, 요깃거리도 챙기고…. 그런데 아버지 제베대오가 허리를 한번 크게 펴고 나서, 아들들이 일을 잘 하고 있나 하고 둘러보니,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물을 손질하는 도구를 내팽개친 두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예수라는 사람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버지 제베대오는 기가 막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 큰 소리로 외쳤을 것입니다. “어이, 아들들! 지금 너희들이 제 정신이냐? 일하다 말고 누굴 따라가는 거야? 지금 출항 5분 전인데! 당장 돌아온다 실시!”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두 아들은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거침없이 예수님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제베대오는 아마도 그날 밤 단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일주일 이상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을 것입니다.

부모를 비롯해서 아내와 자녀들, 생계 도구인 그물과 배마저 버리고 즉시 따라나선 첫 번째 제자단의 모습을 보면서 든 한 가지 생각입니다. 예수님에게서 풍기는 매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으면, 그분의 인품과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으면, 그분께서 건네신 제안이 얼마나 황홀한 것이었으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을 따라나설 수 있었을까?

“구원자 예수님의 얼굴에는 거역하기 어려운 거룩한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따라나서는 비상식적인 결정을 첫 제자들이 했을 리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아버지보다 나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따르고자 아버지를 버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첫 제자들은 영의 아버지를 따르고자 육의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아니, 아버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은 것입니다.”(히에로니무스 교부)

우리 교회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시대와 더불어 꿈에도 예상치 않았던 위기이자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기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다시 한 번 일어서라고, 다시 한 번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라고, 그래서 철저하게도 쇄신되고 더욱 매력적인 교회로 거듭나라고 주신 은총의 기회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묵상해 봅니다. 지상의 나그네를 환대하는 집이 교회가 아닐까요? 목말라하는 나그네에게 시원한 물 한 잔과 쉼터를 제공하는 곳이 교회가 아닐까요? 세상과의 전투에서 상처 입은 부상병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야전병원이나 응급실이 교회가 아닐까요? 넘치는 매력을 바탕으로 날개가 부러진 사람들과 기가 꺾인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가득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 충전소가 교회가 아닐까요?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양승국 신부는 1994년 사제품을 받고 영성신학 전공으로 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