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 김형태

김형태(요한) 변호사
입력일 2021-01-19 수정일 2021-01-19 발행일 2021-01-24 제 322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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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노래들은 들어도 별 감흥이 나질 않습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을 뒤흔든다는 BTS의 ‘다이나마이트’ 역시 영어 노랫말도 그렇고 선율도 잠시 귓가를 간질이고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노래 탓이 아니라 나이 들어 시류를 못 좇아가는 내 탓이겠지요.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마음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가누나’ 이런 노래는 가슴에 절절히 와 닿습니다. 정말로 다 지내 놓고 보니 험한 한 세상 고생고생하며 희망이 무언지 모르고 살아온 친구나 고관대작이었던 친구나 그저 다 한바탕 꿈이더군요.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이 노래말 그대로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며, 사람들은 왜 저리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가요. 술에 만취해 운전하다 앞차를 들이받아 애기엄마를 떠나보낸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고, 그렇다고 저 주정뱅이를 영원히 감옥에 처넣으라고 저주의 아우성을 치는 저 사람들은 또 왜 저러는 걸까요.

최고의 현자라는 ‘소크라테스 형’도 저렇게 아우성치는 사람들에 의해 독배를 마시고 죽었지요. 그는 스파르타의 귀족정을 옹호했다는 혐의로 민주정파들에 의해 신성모독죄로 처형됐습니다. 그래도 테스 형은 ‘세상이 왜 이래’ 하며 원망하지 않고 아주 의연하게 잔을 비웠다지요.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걸 안다.” 테스 형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방도 스스로의 무지를 알고 자기 성찰을 통해 덕을 실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스승의 무고한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플라톤은 그 뒤 자신의 저작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의로운 자에 대해 썼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뭐라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의로운 자라고? 그건 그로부터 400여 년 지난 뒤 예수님 이야기 아닌가. 165년경 순교한 유스티누스도 역시 깜짝 놀랐던지 「플라톤의 십자가 교리」라는 책을 썼다는군요.

사실 이 세상에 왔다가 간 대부분의 의로운 이들은 이타적인 길을 걷다 보니 자신은 매우 고통스런 삶을 살다가 갔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분들을 열심히 칭송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자기 행복만을 열심히 추구합니다. 종교를 가진 이들도 오로지 제 구원과 해탈만을 바라고 교회나 절을 다니기에 비종교인들보다 더 이기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간증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이런 이런 벌을 받았는데 당신을 알게 돼 구세주로 영접했더니 병도 낫고 사업도 잘 되고 아들, 딸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이런 이런 복이 내리더라. 나는 죽어서도 천국 가겠지.’

하지만 테스 형을 보아도 그렇고 예수님을 보아도 세속의 관점에서 전혀 복 받은 인생이 아니죠. 두 분 다 그리 현명하면서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알아 신을 잘 받들어 모셨는데 세상으로부터 핍박 받고 모함 받고 종당에는 신성모독죄로 사형. 그래도 ‘세상이 왜 이래’ 원망도 않으시고 끝까지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르치시다가, 죽음의 길을 의연히 걸어가셨지요.

그렇습니다. 세상은 늘 이래 왔지요. 세상은 너무도 살기 힘들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눠 악의 세력 때문에 세상이 이런 거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 책임에서 빠져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세상이 이런 건 바로 남을 먹어야 내가 사는 우리 자신의 유한성 그리고 이기심, 무지, 이 세 가지 때문일 것입니다. 정말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 의인을 보내시어, 우리로 하여금 유한한 자신의 한계와 무지를 깨닫고, ‘나’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라고 가르치신 거겠지요.

그러니 우리도 의인의 뒤를 따라 갈 일이고, 또 그 길에서 마주치게 될 세상의 핍박과 고생은 각오를 해야겠지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