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평생 모은 재산 기부한 허계순 할머니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1-19 수정일 2021-01-20 발행일 2021-01-24 제 3229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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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어 행복? 주님께 봉헌하니 얼마나 좋소~”
땅 500평과 폐지 주워 모은 돈
마산교구 가톨릭농민회에 전달
넉넉지 않아도 묵묵히 나눈 삶
매일 기도하고 말씀 쓰면서 묵상

아주 추운 날이었지만, 재활용 더미 앞에서 리어카 손잡이를 잡은 허계순 할머니는 “이번주 봉헌금”이라며 밝게 웃는다.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게 아입니더~, 어데다 바꿀끼요~.”

최근 마산교구 가톨릭농민회에 평생 모은 재산으로 일군 땅 500평과 폐지를 주워 모은 돈을 기부한 허계순(마리아·81·인천 부평1동본당) 할머니는 “가난한 게 참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허 할머니는 “빈손으로 태어나 생명의 주님을 만나 먹을 것, 입을 것이 얼매나 많이 있냐”며 “내 몫을 아끼면서 나누면 주님께서 다 알아주신다”고 말했다.

허 할머니가 기부한 경남 진주 땅 500평은 할머니에게 애틋한 땅이다. 결혼 후 남편 실수로 넘어간 땅을 되찾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 않으며 어렵게 되찾은 땅이기 때문이다. 땅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할머니는 농사를 지어, 농산물을 머리에 이고 마산 시내까지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가며 장사를 했다. 바구니 무게에 눌려 머리가 아파 왔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

“참 고생을 마이 했다. 파출부도 하고 돈을 모으기 위해 안 해 본 게 없어~.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고 보리도 심어서 내다 팔았지요. 세례받기 전이었는데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도 참 안 좋았심더~.”

고생했던 시절을 회상하던 허 할머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너무 힘든 마음에 무당을 찾아간 적도 있다고 했다. 고생 끝에 땅을 되찾은 허 할머니는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공장에서 먹고 자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힘겹게 자녀들을 키우던 할머니는 딸의 권유로 1987년 세례를 받았다. 이후 땅을 팔면 살림살이가 좀 더 나아질 수도 있었지만, 허 할머니는 “신앙을 갖게 되니 땅을 팔기가 싫어졌다”고 고백했다.

“주님이 주인 되시니 얼마나 좋소~. 신앙이 있어 참 행복합니다. 밭은 작지만 그래도 하느님 땅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아요. 하느님 나라에는 숟가락만 들고 가도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실 겁니다~. 남편한테 한 푼도 못 얻어 썼지만, 주님이 항상 함께 계셔서 외롭지는 않았어요.”

할머니가 기부를 결심한 계기는 우리농 소식지에서 가톨릭농민회 마산교구 농어촌복음화위원회 강형섭 신부의 글을 만난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가꿀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어렵게 일군 땅을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본당 수녀에게 전달했고 수녀는 가톨릭농민회로 연결해 줬다.

허 할머니가 보여 준 감사패와 공로패를 찬찬히 보니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숨겨진 ‘기부천사’였다. 할머니는 1992년 부평1동본당 설립 준비 시기부터 2005년까지 본당 할머니들과 함께 13년간 된장과 고추장, 빈대떡 등을 팔아 총 2억100만 원을 기부했다. 또 인천교구 성모병원과 성모당을 지을 때도 각각 150만 원, 100만 원씩 보탰다. 언젠가는 고민하다 기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깨에 날개를 단 듯 몸이 가벼웠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다리도 편치 않고 발가락 한 개는 남의 발가락마냥 말을 듣지 않아 몸이 불편하지만, 매일 폐지와 빈 병을 주우러 나간다. 그러면서도 돈을 받으면 항상 3000원으로 성당 초에 불을 켠다.

“저는 지금 생활이 참 재밌어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문 닫는 가게도 있는데~ 저는 집에 있을 시간이 없이 바빠요. 재활용품들이 항상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주님이 마련해 놓으신 거죠.(웃음) 주님은 확실히 믿으면 확실히 돌려주십디다.”

매일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고 103위 성인 호칭기도를 바친다는 허 할머니는 성경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허 할머니는 감명 깊은 성경 구절을 여기저기 적어 두는데, 마산교구 가톨릭농민회에 기부하고 받은 증서 왼편에도 여러 구절을 손수 적은 종이를 끼워 뒀다. 또 인터뷰 다음 날까지 토빗기와 집회서 등에서 감명받은 구절을 전화기 너머로 불러 줬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1열왕 17,16)는 구절을 소개하며 “주님께 먼저 봉헌하고 나면 항상 다 채워 주시더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나눔이야말로 가난한 이들의 헌금 두 닢을 더욱 값지게 받으시는 하느님을 감동하게 하는 나눔이 아닐까.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