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걷는다.
눈을 끔벅여 솟아나는 눈물을 참으며 아득한 고향 하늘을 향해 걷는다. 두 뿔로는 하늘을 떠받들고 두 조각 단단한 발톱으로는 인고의 세월을 재며(尺) 온 몸으로 걷는다. 커다랗게 뜬 눈에 가끔 서글픈 하늘이 비쳐올지라도 퉁방울의 검은 눈을 감고 살아갈 팽팽한 시간을 명상에 젖어 걷는다. 업고(業苦)의 죄로 씌운 고삐를 원망하지 않고 산고(産苦)와 같은 고달픈 삶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긴 속눈썹으로는 지상의 떫은 생을 쓸어낸다. 전설 깊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체념(諦念)을 핥고 있다. 타고난 운명의 멍에를 벗어날 수가 없기에 기다란 꼬리를 흔들어대며 노동의 시간마저 즐긴다. 그가 걷는다. 초원을 향해 뚜벅뚜벅.권영춘(바오로ㆍ서울 서원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