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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여왕의 시간 / 강민주

강민주(일루미나) (제1대리구 율전동본당)
입력일 2021-01-12 수정일 2021-01-12 발행일 2021-01-17 제 322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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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자 하는 곳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걷는다. ‘앗!’ 순간 나의 손은 땅바닥을 집고 주저앉았다. 땅바닥과 나무 바닥재의 층을 구분하지 못한 발이 그만 헛짚고만 것이다.

“아, 아파! 아이고 뭐야!” 민망해하며 일어나려고 발을 딛는데 통증이 온몸을 덮는다. 일어나기가 어렵다. “이런 골절인가보다. 큰일이네!” 발목 골절로 고생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났네. “어쩌나!” 한숨과 눈물이 핑 돈다. 아프기도 하고 걱정이 휘감는다. 또!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 년 만에 일어났다. 다친 발이 아직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닌데 겁이 덜컹 난다. 엑스레이 찍고 반깁스를 하고 있다가 부기가 가라앉은 후 통깁스를 했다.

본의 아니게 여왕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다리를 고정한 자세로 읽고 싶은 책과 먹고 싶은 것을 쌓아 놓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세상 편한 시간이다. 딱 이틀 만에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라고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낸다. 몸이 답답하다고 아우성을 치는 거 같다. 몸을 구성하는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건강한 몸으로 일상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축복이며 감사할 일임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한편으론 여왕의 시간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신앙인으로 나와 이웃을 충분히 사랑했는지, 내 주위를 돌아보기는 했는지, 기도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타인들의 불편함이나 아픔과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왕의 시간은 나를 사랑하게 만들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드디어 깁스를 풀고 통원치료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가족 모두가 나의 손발이 되어 내가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었다.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답답했을 나를 걱정하고 격려해 주었다. 날고 있다면 이 기분이리라! 날아갈 거 같다. “와우, 다시 찾은 일상이네.” 고생하고 잘 버텨준 나를 위해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가족의 배려에 마음이 뭉클하며 행복하다. 하늘은 왜 이리 파랗고 아름다운지! 구름의 모양은 왜 이리 다양한지! 바람에 스치는 자연의 소리는 왜 이리 환상적인지!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내뿜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에 사랑스러움과 감사함이 저절로 일어난다. 따뜻한 커피가 하느님의 말씀처럼 향기롭고 부드럽게 나의 온몸으로 퍼진다. 평범한 일상이란 하느님의 은총이리라.

강민주(일루미나) (제1대리구 율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