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이 삶의 기원은 무엇인가?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1-01-05 수정일 2021-01-06 발행일 2021-01-10 제 3227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주님 세례 축일
제1독서(이사 42,1-4.6-7) 제2독서(사도 10,34-38) 복음(마르 1,7-11)
세례 받기 위해 요한을 직접 찾아가 줄을 서며 기다리신 예수님
사람들의 삶에 기꺼이 동참해 공감하고 기도하는 모습 보이신 것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삶에 책임감을 갖고 주님 사랑에 응답해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여정 인도 받을 수 있어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디트리히 본회퍼)

새해를 맞으며 하느님이 주는 선한 힘이 우리 각자의 삶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인류의 미래를 지켜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세례는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강의 기원, 수원지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이 받은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은총을 삶에서 살아 내기를 청합니다.

■ 복음의 맥락

복음은 마르코가 전하는 예수님 세례 이야기입니다. 세 복음서(마태 3,13-17; 루카 3,15-16.21-22; 마르 1,7-11)가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조금씩 다르게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요한을 직접 찾아갑니다.(마태 3,13) 인간 구원을 위해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찾아가는 예수님 모습이 세례에서부터 드러납니다. 그런데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루카 3,21)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문득 미국인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밤샘을 하고 노숙도 하면서 줄서 기다린다는 뉴스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제 코로나19 백신은 우리 시대의 구원자가 된 듯합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보다 백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긴 줄 안에서 기다리는 형제와 자매들 가운데에서 예수님도 겸손하게 당신 차례를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줄 안에 들어가 선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삶에 기꺼이 동참해 경청하고, 공감하고 기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이

예수님은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고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성령과 하느님 목소리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모든 업적은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힘과, 아버지와 누리는 친교에서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당신은 하나라고 할 정도로 깊은 친교 안에서 그분의 생애 전체,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을 삽니다. 정말 하느님 속에 닻을 내리지 않고서는 복음서의 예수라는 인물은 그저 희미한 그림자와 같고 비현실적이며 도무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강조하는 루카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기도할 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 장면을 기록해 준 루카에게 깊이 고마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기도 중에 체험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재는 잣대와 주변의 기대에서 나오는 소리에 따라 본인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들에는 하느님의 숨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우리의 잠재력을 성장시키는 생각보다 체념과 부정적인 생각이 담겨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의 참된 정체성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감춰져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성장시키는 참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듣는 것이 우리 삶을 형성합니다. 우리가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분 말씀을 경청할 때 하느님은 정말 우리를 염려하는 아버지로서 우리 삶 안에 개입하십니다. 고요한 가운데 우리가 자주 잊어 버리고 있는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알려 주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 내 마음에 드는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말하는 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질 때, 나아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온갖 유혹이 다가올 것입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스도의 세례’ (1472~1475년)

■ 정체성에서 소명으로

예수님의 세례는 사랑 받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명, 나아가 세례 받은 우리 사명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지만 그 사랑은 우리 삶에서 책임을 갖고 응답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종은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고 인간을 온갖 악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주님의 영을 받습니다. 특히 이 종이 지닌 겸손한 태도에서 예수님 모습, 우리 모습이 보입니다. 작은 선의의 불씨도 꺼버리지 않는 온유함,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는 공감능력과 섬세함, 소명에 따르는 시련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용기.

베드로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세례를 준비하는 설교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성령과 힘을 받은 후에 하신 일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사도 10,38)

■ 세례, 성령 안의 삶

세례는 그리스도교 입문 의식에만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도 바오로의 세례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서 6장에서 바오로는 세례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 그리스도 운명을 내 운명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삶의 특징을 ‘성령 안의 삶’으로 소개합니다. 이제 세례의 여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하는 역할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체험과 분리해 성령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체험이 먼저고 성령 체험이 이어집니다. 성령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삶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 성령이 주는 선한 능력 안에서 세상의 고통에 잠기면서 하느님께 협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