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코로나19 시대 학교 밖 청소년과 ‘서울A지T’ 담당 사제 이야기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01-05 수정일 2021-01-05 발행일 2021-01-10 제 3227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문제아’ 낙인 대신 관심과 사랑 보내 주세요
학교 포기하는 사연 다양하지만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편견은 여전
‘학생’ 위주로 운영되는 제도와 지원
사실상 학교 밖 청소년들 제외시켜
편견에 더해 차별로 이어지는 상황
코로나19 상황에 더 큰 위기 내몰려
교회와 지역사회 함께 마음 모아야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A지T’(아지트) 소장 은성제 신부.

재난 상황이 되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학교 밖 청소년도 그 중 하나다. 입시 위주로 점철되는 우리나라 교육환경에서 학교를 벗어난 청소년이 겪는 차별과 소외는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졌다. 학교 밖 청소년의 삶을 살고 있는 정지원(18)양과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버스로 직접 찾아가는 사목을 하고 있는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 소장 은성제 신부 이야기를 통해 학교 밖 청소년들 실상을 들여다 보고 교회 역할을 찾아 본다.

■ 학교 밖 청소년이 들려주는 학교 밖 이야기

지난 2019년 여름, 정지원(18)양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입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학교 생활에 큰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시험과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10분이 채 안 되는 쉬는 시간마저도 대학입시를 위해 열을 올려야 하는 상황은 영화제작과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정양과 맞지 않았다.

정양은 일말의 후회 없이 자퇴서를 내고 학교 밖 청소년센터와 인권단체를 오가며 하고 싶은 일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청소년을 학생과 동일선상에 두기 때문에 저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아요.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을 넘어 지하철을 탔는데, 왜 이 시간에 학교를 가지 않냐고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어른도 있었고요.”

편견은 편견으로 그치지 않고 제도 안에서 차별로 이어졌다. 정양은 청소년 공모전에 응시하고자 했지만, 대상이 중·고등학생이라 학생 신분이 아닌 정양은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은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더 부각됐다.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때도 학생증을 요구합니다. 구청에 문의해서 청소년증도 가능하다는 확인을 받은 다음에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의 경우 학교와 가정만을 중심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 개개인은 복지 혜택을 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식비 지원에서도 차별이 발생했다. 서울 지역 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들에게는 미지출 급식 예산이 10만 원 상당 모바일 쿠폰으로 지급됐다. 지난해 6월 학교 밖 청소년에게도 상품권 등을 지급하라는 권고가 있었지만, 학교 밖 청소년들은 권고가 내려온 3개월 후 센터로부터 연락 받았다. 그것도 3일 이내로 서울시교육청에 식비 지원을 받으러 가야 했다.

정양은 “오후 1시30분에 문자를 받았는데, 전화로 신청해야 하는 시각은 당일 오후 4시까지였다”며 “또 학생들은 식자재 배송 주문을 할 수 있는 모바일 쿠폰을 지급 받았지만 학교 밖 청소년들은 기간 내에 오프라인으로 직접 방문해 상품권을 수령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절차로 인해 학교 밖 청소년들은 식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고, 기관에 소속돼 있지 않은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는 사실상 지원에서 제외됐다.

이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대부분의 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학교 밖 청소년이 거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부재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들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학교에 소속돼 있지 않은 청소년들도 청소년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입시위주 정책에 가려져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최소한의 동등한 기회는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 위태로운 가정환경으로 주변을 맴돌고 있는 청소년들과 기본적인 시스템에 적응하기 힘든 장애인들은 현실적으로 학교가 품을 수 없기 때문에 사회와 어른들이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정지원양이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 ‘자퇴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센터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정지원양. 정지원양 제공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A지T’(아지트). 은성제 신부 제공

■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 소장 은성제 신부 이야기

“어른들의 인식개선이 가장 중요합니다. 꿈을 위해 학교를 포기한 아이들이건 불안한 가정환경으로 학교에 부적응하는 아이들이건 학교 밖 청소년들은 공통적으로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이 낙인을 없애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은성제 신부는 무엇보다 학교 밖 청소년을 볼 때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 신부는 “학교 밖 청소년을 비롯해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은 직장인들이 가슴에 사표를 쓰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처럼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힘든 사연이 있다”며 “내막을 알고 나면 이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서울A지T’(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 이하 아지트)는 가정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에게 버스로 다가가 가출을 예방하고 그들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돕는 청소년이동쉼터다.

은 신부는 “청소년들이 밀집돼 있는 곳으로 아지트가 가면 시끄럽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온다”면서 “어른들의 역할은 방황하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접근성 좋은 곳에서 지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정책을 마련하기 이전에 지역사회 전체가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데 긍정적으로 마음을 모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이마저도 힘들게 됐다. 은 신부는 “주변 청소년 관련 기관들 대부분이 휴관이고 프로그램을 하다가 멈추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지트 역시 2020년 1년간 1달 정도밖에 운영을 못했다. 아지트는 차선책으로 후원받은 식료품과 마스크 등을 나눠주고 연락 가능한 청소년과 먼저 연락 오는 청소년들에게 상담을 통해 지원했다.

은 신부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상황에 처했지만, 소통 창구가 부족한 학교 밖 청소년들은 더 심한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며 “일반적인 가정의 학생들도 우울감이 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은 신부는 신앙 안에서 함께 마음을 모을 것을 당부했다.

“내가 겪는 약간의 불이익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공동선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희생에 있어 관대할 수 있어야 하고 잘 끌어 안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역 사회 안에서 잘 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느낍니다. 전인적인 치유를 하시는 하느님 손길이 필요합니다. 직접적인 희생과 봉사도 중요하지만 함께 마음 모아 바치는 기도가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