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함께 꿈꾸자, 같이 잘 사는 세상을” 코로나19로 인한 멈춤의 시간 새로운 삶의 방향 모색할 기회 속도 늦추고 주변 둘러보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 찾아야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가면을 벗습니다. 그리고 숨겨진 성격이 드러나죠. 교황님은 위기 시에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능적 회피를 해서는 안 된다며 착한 사마리아인의 경우를 예로 꼽습니다. 다쳐서 아픈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을 돌보는 것은 내 일이 아니야’라며 외면하고 회피할 일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나서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진정한 의인들은 섬기는 소명을 거역하며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는 자가 아니라 소명을 다하며 짧게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현대의 순교자는 무관심이란 바이러스를 이겨 내는 항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 한 명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라고 하신 주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순교자의 영성은 형제애라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세계에 대해 함께 책임감을 갖는 것이 형제애라고 하십니다. 아울러 교황님은 새로운 미래를 발견하고 싶다면 주변부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하느님께서도 피조물을 재건하려 하실 때 주변부로 가셨기에 우리도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곳은 죄와 고난, 배척과 고통, 질병과 외로움의 공간이었지만 죄가 많아진 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는 말처럼, 주변부는 온갖 가능성으로 가득한 곳이며 그곳에 있어야 세상이 명확히 보인다고 하십니다. 가진 자들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개발을 하고 돈의 흐름과 시장의 흐름을 막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작 불도저식 개발은 자연을 훼손하기만 했고 그로 인해 지구를 오염시켰으며, 돈의 흐름과 시장의 흐름은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됐습니다. 개발을 할수록 불평등은 심화되고 없는 사람들은 더 고달픈 삶을 살게 됐는데,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보려면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진 자들은 더 벌기 위해 무차별적 개발에 혈안이 됐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함께 살아갈 터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교황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며, 이 땅의 주인공이자 공동의 창조자가 돼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이 땅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면서 “LET US DREAM!”을 외치십니다. 교황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지고 싶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라는데 그것이 맞는 말인가? 인간은 지구에 빌붙어 사는 존재입니다. 그럼 지구 입장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지구에 유익한 존재인가 아니면 해로운 존재인가? 지구가 볼 때 지구의 이마에서 핵실험을 하고 지구의 심장인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고 지구 위에서 자기들끼리 살육전을 펼치는 인간들을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 물음을 던지고 싶습니다. 긴 코로나19 사태는 지구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는지에 대한 답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우리 몸에 달라붙으려는 해충을 없애려고 하듯 지구도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을 교황님의 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