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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새해의 다짐 / 이미영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이미영(발비나) 소장은 가톨릭대학교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입력일 2021-01-05 수정일 2021-01-05 발행일 2021-01-10 제 322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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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연초에는 새해에 바라는 소망이나 한 해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을 떠올리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곤 합니다. 그런데 작년 내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세에 따라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던 시간을 보내면서 지쳐서인지, 올해는 새해를 맞았어도 무언가 계획을 세울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저 백신이나 치료제가 효과가 나타나서, 평범했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바람뿐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새해의 지침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다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1월 1일을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발표하신 메시지에 눈길이 갔습니다. 올해 교황님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주제는 ‘평화의 길인 돌봄의 문화’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계획에서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돌보고, 카인과 아벨로 시작된 형제자매의 역사에서 형제를 지키고 돌봐야 한다는 소명이 있다고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사랑과 돌봄을 보여주셨고, 제자들은 이를 본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애덕을 실천하였습니다. 이번 담화문에서 교황님은 사회교리의 주요 원칙인 “모든 인간의 존엄 증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연대, 공동선의 추구”에 “피조물 보호”를 새롭게 추가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돌봄의 문화를 이루는 데 앞장서자고 요청합니다.

이번 평화의 날 담화문은 작년 가을에 나온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회칙 『모든 형제(Fratelli Tutti)』의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사회 회칙 『모든 형제』는 길에서 강도를 당한 낯선 사람을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소개하며, 우리의 삶을 내 가족이나 작은 집단 등 좁은 관계로 축소하지 말고 ‘자신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성장하라고 초대합니다(89항).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성령의 선물인 ‘친절’의 미덕을 회복하라고 제시합니다(222-224항 참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미소를 건네고, 경청하고 격려하는 말을 건네는 친절한 습관을 들이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면, 우리 삶의 방식과 이웃과의 관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새로운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 회칙은 말합니다.

『모든 형제』 회칙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라며, 우리는 조만간 고통당하는 사람을 만날 것이고 오늘날에는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될 거라고 합니다(69항). 실제로 얼마 전 뉴스에도 이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전해졌습니다. 노숙을 하던 한 장애인의 어머니가 사망한 지 5개월 만에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발달장애가 있던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거리에서 노숙하며 지냈습니다. 그는 지하철역 앞에서 몇 달을 구걸하며 지냈지만, 그 앞을 지나간 무수히 많은 사람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난 뒤 한 사회복지사가 멈춰서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앞에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쓰인 쪽지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경찰에 연락해 비로소 그의 어머니 죽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마 그 사회복지사가 멈춰서서 그 쪽지를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노숙인에게 말을 건네고 그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방치된 채 있었을 것이고 그 장애인 역시 이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대부분 무관심하게 외면하며 지나칠 때, 멈춰 서서 이야기를 건넨 사회복지사는 분명 사마리아인의 모습입니다. 저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 중 어떤 사람의 모습일까요?

2021년 저의 새해 다짐은 ‘친절하게’ 살자고 정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이들에게 친절한 미소와 인사를 건네고,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안녕만 바라지 말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실에도 관심 가지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위로와 연대를 나누고 신음하는 지구의 아픔에 응답하는 친절함을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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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이미영(발비나) 소장은 가톨릭대학교대학원 종교학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