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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복음적 복수 / 양하영 신부

양하영 신부 (제1대리구 남양본당 주임)
입력일 2021-01-05 수정일 2021-01-05 발행일 2021-01-10 제 322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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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질문 중 하나가 ‘용서를 어떻게 해야하나요?’이다. 나조차 용서가 힘들다. 그래서 복음 중에 불편한 구절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고 하신 부분이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니. 말도 안 된다. 칠천칠백 번이 아니라 칠만칠천 번을 용서했어도 용서가 안 되고 아픔은 여전하니 말이다. 아무리 해도 용서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용서에 지친 어느 날, 선배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 신부님은 용서에 지친 내 영혼을 토닥여주시면서 ‘나를 힘들게 한 상황에서 눈을 돌려 십자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내가 살아오면서 당신 가슴에 수없이 대못을 박았어도 늘 용서해주시고 안아주시는 예수님의 마음. 내가 이렇게 용서받고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데 나는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하는 이야기였다.

위로를 받고 돌아와 십자가 예수님 앞에 앉았다. 정말 감사하고 깊은 위로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다음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생각을 하면서 결심했다. 삐뚤어지기로 했다. 복수하기로 했다. 다만 삐뚤어짐과 복수의 방법은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도 내밀라고 하셨다. 때리는 사람한테 여기도 때리고 저기도 때리라고 계속 들이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까? 천 걸음을 같이 가자고 강요받으면 이천 걸음을 같이 가주라고 하셨는데, 이천 걸음을 걷는 동안 누가 더 두려워할까?

복음적 복수, 투쟁을 예수님을 통해서도 본다. 예수님께서 고문당하시고 십자가 지고 걸어가신 모습에 엄청난 투쟁이 담겨 있다. 예수님의 투쟁은 묵묵히 걸어감이다. 당신을 향해 날아드는 수많은 채찍질, 온갖 모욕에도 단 한마디 말조차 하지 않으신다. 그저 당신의 길만 묵묵히 걸어가실 뿐이다. 악랄한 채찍질에도 끝까지 묵묵히 가는 예수님을 보며 형리들은 때릴 맛 안 났을 것이다. 질렸을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핏빛 십자가 밑에서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의 복수 성공이다. 투쟁의 완벽한 승리다.

용서하는 데 힘 빼지 않을 것이다. 용서가 힘들어 숨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뺨을 내밀어 맞고, 이천 걸음까지도 함께 걸어낼 것이다. 어떤 변명이나 하소연보다 침묵 가운데 내가 가야 할 길을 끝까지 묵묵히 힘차게 걸을 것이다. 나에게 상처 주고 아픔을 주는 이들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더 복음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뒤따른다. 더 용서하는데 아파하고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떵떵거리며 잘 사는 원수보다 더 당당하게 어깨 펴고 묵묵히 우리의 길을 끝까지 걸어내자. 십자가 위 예수님께서 우리를 몇 번이든 끝까지 사랑으로 일으켜주시고 있지 않은가.

양하영 신부 (제1대리구 남양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