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51) 엄마의 남은 시간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입력일 2020-12-28 수정일 2020-12-29 발행일 2021-01-01 제 322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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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기 전에…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져 버린 엄마의 몸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만 슬퍼진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당신이 살아오면서 얻게 된 희생의 결과였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엄마의 망가진 몸을 밟고 서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혼인하고부터 지금까지 한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느낄 만큼 바빴고 여유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챙겨드리는 일은 늘 정성껏 했다고 생각해 왔다. 아이들이 자라고 내 일과 성당 일, 그리고 ME 활동으로 점점 바빠져서 한 달에 한두 번 부모님 댁을 찾아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삼 남매 중 막내인 내가 유일하게 부모님을 챙기는 자식이다 보니 부모님은 늘 내게 고마워하셨고 나도 나만한 자식은 없다는 자만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요즘 함께 살며 심각하게 굽은 엄마의 등을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무색해지는 느낌이다. 엄마 등이 언제부터 저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고 어느 날 문득 엄마 등이 심하게 굽었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병원에 모시고 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늘 주기만 했던 엄마에게 익숙해서였을까?

엄마는 평생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며 사셨다. 자신의 즐거움이나 자신의 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밤낮 가리지 않고 일만 하셨다. 우리 집에서 살기 시작하며 나와의 가장 큰 갈등의 원인도 일이었다. 나는 이제 좀 편히 사셨으면 하는데 엄마는 어떻게든 나를 돕고 싶어 하셨다. 늘 허리와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며 설거지를 하시겠다고 고집하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식구들이 들어올 때마다 밥 차려주시겠다며 주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올라왔다. 엄마의 존재감을 일에서만 찾으려 하시는 엄마의 오래된 습성이 싫었다.

엄마를 보며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내 건강을 돌보고 나의 즐거움을 찾기보다 남편과 아이들 앞에 나는 항상 뒷전이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를 보며 절실히 느낀다. 늘 받기만 했던 사람은 그것에 익숙해져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내 모습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엄마의 몸은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을 만큼 망가져 있다. 휘어진 등 때문에 늘 허리가 아프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계시고 틀니 때문에 잇몸이 상해서 음식을 잘 못 씹으시고 만성적인 변비 때문에 고생하신다.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져 버린 엄마의 몸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만 슬퍼진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당신이 살아오면서 얻게 된 희생의 결과였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엄마의 망가진 몸을 밟고 서 있는지도 모른다.

눈에 띄게 마르고 허약해지시는 엄마를 더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여름 우리 집으로 모셨다. 내가 한집에서 챙겨드리고 손자들과 재미나게 지내면 건강도 좋아지시고 행복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엄마는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체중도 늘고 건강도 좋아지시는 듯했는데 입맛을 잃으며 점점 허약해지셨다. 치매도 점점 심해져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종종 생긴다.

불과 1년 만에 엄마의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내가 잘 모시지 못한 탓인가 하는 생각에 자책감이 밀려온다. 그동안 열심히 식사 챙겨드리고 약 챙겨드리고 맛난 것 사다 드리며 한다고 했지만 언제 한번 한가히 앉아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늘 뭔가 챙겨드리고 바로 외출하거나 주방으로 달려가 하던 일을 부지런히 했다. 따로 살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찾아뵙긴 하지만 부모님 댁에 머무르는 시간은 온전히 부모님을 위해 내어드리는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함께 살긴 하지만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니 엄마는 오히려 더 외로우셨을 것 같다.

엄마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지만, 그 시간 동안 엄마와 좀 더 따뜻한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허무하게 느끼지 않고 생명을 주시고 삶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