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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한국과 교황청 / 황소희

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
입력일 2020-12-28 수정일 2020-12-29 발행일 2021-01-01 제 3226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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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와 현실 정치에서 교황청과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한국 사례로 분석하기 위해 관련 연구를 찾아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않는 교회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학술 연구는 해외에서 주로 진행됐다. 특히 1차·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전 세계에 공산주의가 확산되던 시기, 교회는 반공주의의 투사가 돼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교회가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이유는 유물론에 기반을 둔 이 사상이 인간에게서 신을 분리하는 사고를 담지하기 때문이었다.

교황청과 가톨릭교회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단행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이념에 따라 남북한으로 나뉘었을 때, 한국을 독립국으로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승인해 힘을 실어준 존재가 교황청이었다. 유엔총회에서 한국이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로 외교적인 승인이 될 수 있게 물밑에서 지원했던 교황청의 드러나지 않은 조력은 당시 교황 순시자로 한국에 파견됐던 패트릭 번 주교와 천주교 신자로 외교활동에 임했던 정치인 장면(요한)에게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황청 관계사 발굴 사업팀’이 정리한 번 주교의 국내외 서간 자료를 열람하면서 인상깊었던 대목은 한반도에서 가톨릭교회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 정부가 설립돼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번 주교의 의지였다. 교황청도 그가 소속된 메리놀외방전교회와 사전에 논의하지 않고 그를 한국에 교황청 순시자로 파견할 만큼 한반도 북부 지역이 공산화된 당시 정세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승인된 과정은 당시 민주주의의 선봉에 서 있던 미국과 교황청의 반공주의 연합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인류에게 반공주의가 해묵은 정서가 된 이래 더는 교황청이 반공주의를 저지하는 역할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대신 교황청이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고자 하는 규범은 더욱 다양해졌고, 인류의 존엄을 지키고 창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가치를 추구한다. 심각한 인류 공동의 문제로 인식되지만, 국가 간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등한시되는 난민과 기후위기, 돌봄의 연대와 같은 가치 말이다. 교회는 교황 담화를 통해, 국제기구에서 여론을 조성해, 지역사회에서는 사목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연구를 마무리하며 감동이 밀려왔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담대한 용서와 따뜻한 시선 때문이었다. 과거 번 주교와 남한에서 납북된 성직자와 수도자, 북녘 지역 교회 인사들이 박해로 몰살된 뼈아픈 기억에도, 현재 교황청과 한국교회는 북한을 응징하고 책임을 물으려 하기보다 화해하고 일치를 이루자며 온화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평화의 손길을 내민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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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