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65) 길을 묻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2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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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새로운 소임을 받아 생활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서울에 볼 일을 보러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고창에서 곧장 서울로 가는 열차편이 없어서 서울을 가려면 정읍역으로 가서 KTX 고속열차를 타고도 1시간 30분 정도를 가야 용산역에 도착합니다. 그날도 ‘9시 20분 정읍역-용산 방면’ 열차표를 예매했고, 함께 사는 신부님께서 정읍역까지 수도원 차로 데려다 주었기에 9시 즈음 도착했습니다.

열차 출발시간까지는 20분 정도 남았고 ‘서대전-용산’으로 가는 이정표가 눈에 보이기에 자연스럽게 그 쪽 선로로 내려간 다음, 여유 있게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반대편 쪽, 4번 선인가, 5번 선에는 사람들이 좀 있었지만, 내가 서 있는 선로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혼자 생각하기를 ‘여기 사람들은 서울 잘 안가나 보다!’

시간은 9시5분, 10분, 15분이 지났고, 한적한 플랫폼을 걷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들렸습니다.

“… 우리 열차 곧… 행신 방면… 4번 출구… 노란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서… ”

‘행신? 가만… 의정부 방향, 그 동네가 행신역인데, 그러면 저기 오는 저 기차가 용산 방향 KTX? 그럼 여기는 몇 번이지, 8번. 헐…’ 나는 8번 선로에 서 있었던 겁니다. 멀리서는 KTX 기차가 선로를 향해 들어오고! 뛰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나였지만, 무조건 저 - 기차를 타야 했기에, 그렇지 않으면 하루일정이 모두 꼬이기에… 뛰었습니다.

가방을 안고, 초스피드로, 높디높은 계단을 뛰어 올랐고! 4번 선 쪽으로 간 다음, 또 다시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4번 선에 도착한 나는 때마침 멈춰 선 KTX를 무사히 탈 수 있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승차했고, 숨을 헐떡이며 기차를 탄 나는 자리를 찾아서 앉았습니다. 객실은 너무나도 조용했고, 단지 나의 심장 뛰는 소리만 힘겹게 들렸습니다.

낯선 곳, 그곳은 새로운 곳이면서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일수록 정작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살려는 자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전부터 잘 알고 있다는 모든 것들을 좀 내려놓고, 새로운 곳에는 ‘아는 길도 물어 가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나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9시 즈음 정읍역에 도착했을 때, 용산역 가는 방향을 누군가에게 물었더라면 그 길을 알려 줄 사람은 주변에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이 낯설다는 이유로 나에게 길을 안내해 줄 수많은 사람이 옆에 있었건만, 가야할 길을 묻지 않은 채 혼자서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하다가 그만… 낭패를 겪고, 숨도 헐떡거리고! 결국은 내 몸이 고생, 고생, 생고생을 했던 겁니다.

우리 삶, 살아온 인생이 경험이 되고 자연히 익숙함에 젖어 있다 보니, 때로는 자기만의 길만 고집하면서 ‘내가 다 알지’하며, 혼자서 자기 길만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결코 좋은 건 아닌 듯 합니다. 나이가 들었기에 많은 것을 안다고 말은 하지만, 살다보니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변치 않을 분, 홀로 천주님 외에는 우리가 안다고 하는 그 모든 것…, 어쩌면 낯설고 새로운 것들 입니다.

낯선 곳에서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잘 살고 싶다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겸손하게 길을 물어야 합니다. 좀 전에, 죽어라 뛰던 내 모습이 또 다시 떠오릅니다. 겸손하게 주변 사람에게 다가가 길을 물으며 다니던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혼자만 죽어라 뛰며 살던지! 선택은 본인이 할 겁니다. 지금도 뛰는 내 심장 소리를 들으며, 저는 선택했습니다, 앞으로는 겸손하게 길 묻고 다닐 것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