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020 교회 문화 결산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2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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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세상 밝히는 빛’ 예술 통한 위로 건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
문화·예술 분야 타격 컸지만 고통과 슬픔 작품으로 승화
위로와 희망 세상에 전해

“유머는 슬픔에서 나온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은 문화계에도 적용됐다. 일상을 앗아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문화·예술 분야는 직격탄을 맞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공연과 전시는 대부분 중단됐지만 희망을 노래한 이들의 작품은 회색빛 사회에 한 줄기 빛이 됐다. 올 한 해 문화계 주요 행사와 성과를 돌아본다.

■ 인생은 가장 큰 기적

일상이 추억이 된 올해 문화계 가장 큰 화두는 ‘위로’였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곡 ‘Life Is a Miracle’(삶은 기적)을 발표했다. 이탈리아 가수이자 작곡가인 페데리코 파치오티(Federico Paciotti)와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조반니 알레비(Giovanni Allevi)와 함께 작업했다.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된 가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잃어버린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곡은 희망을 노래하지만 사실은 슬픈 이야기가 있다. 파치오티의 어머니 파트리치아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자, 절망에 빠져 있던 파치오티에게 조수미는 “아픈 마음을 표현한 곡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뮤직비디오 끝부분에는 ‘이 곡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파트리치아를 비롯한 코로나19 희생자들에게 바친다’는 메시지를 실었다.

조수미는 앞서 4월에도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달랬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에 올린 영상에서 현재 상황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며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건반 위의 구도자’라고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요셉 마리)가 연주하는 위로의 선율도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올해 7월 백건우는 KBS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클래식 희망 프로젝트인 ‘우리, 다시: Hope from Korea’(한국으로부터의 희망)에 임하며 “아름답다기보다는 위대한 음악으로 치료가 되고 조금이나마 마음에 평화를 얻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시성 36년 만에 완성

올해 6월에는 한국 103위 순교 성인들의 고귀한 삶과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한국 103위 순교 성인들 개별 초상화 전체가 시성 36년 만에 마침내 완성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 사업은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장봉훈 주교)가 2018년부터 3년에 걸쳐 진행했다.

한국 순교 성인 103위는 1984년 방한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원칙적으로는 성인들 개별 초상화와 103위 성인화를 사전 제작해야 했다. 하지만 1984년 당시 한국 천주교 역사상 최초로 시성식을 거행한 데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업이 겹쳐 성인들 개별 초상화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후 몇몇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성인화를 그리기는 했지만 이는 26위에 불과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와 상임위원회, 문화예술위원회 등은 정식 절차를 거치고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의 자문을 구한 뒤 2017년 7월 나머지 77위 성인 초상화 제작 사업을 승인했다. 새로 제작한 성인화들은 모두 상반신 위까지 그렸으며, 크기도 통일했다.

완성된 초상화는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전관에서 전시했다. 특별전 ‘피어라, 신앙의 꽃’에서는 103위 성인 시성식 거행 이후 최초로 103위 성인 초상화 전체를 한자리에 모았다. 새로 제작한 초상화 77점과 함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정하상 바오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조신철 가롤로 등 기존에 제작된 26위의 초상화 작품을 선보인 의미 있는 자리였다.

9월 4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열린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 ‘피어라, 신앙의 꽃’ 개막식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스틸컷.

조수미 ‘Life Is a Miracle’ 앨범 표지.

■ 스크린에 펼쳐진 신앙의 아름다움

코로나19로 영화계는 꽁꽁 얼어붙었지만 그 가운데 가톨릭 신앙을 다룬 영화들이 개봉해 우리 사회에 고요한 위로를 건넸다.

11월 개봉한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감독 김동원)는 엄격한 카르투시오 헌장을 따라 살아가는 수도자들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모두가 잠든 밤에 우리를 대신해 기도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어떤 편안함과 든든함이 전해졌다.

영화는 지난해 12월 방영한 KBS 3부작 다큐멘터리 ‘세상 끝의 집-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을 극장용으로 재편집했다. 김동원(브루노) PD는 이 작품으로 제30회 한국 가톨릭 매스컴대상 TV부문상을 수상했다.

고(故) 이태석 신부(살레시오회, 1962~2010)의 제자들 모습을 담아낸 영화 ‘부활’(감독 구수환)은 10년 전, 전 국민을 울린 영화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구수환 감독의 후속작이었다. 진정한 리더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며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의 의미도 담아냈다. 파티마 성모 발현을 그린 영화 ‘파티마의 기적’(원제 ‘Fatima’, 2020년)도 담담하게 믿음의 힘을 보여 줬다.

한편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스크린 속 선율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린 영화 음악의 거장 고(故) 엔니오 모리코네가 7월 6일 로마의 한 병원에서 선종했다. 영화 ‘미션’(1986)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비롯해 ‘시네마 천국’(1988) 사운드 트랙 등 500편이 넘는 영화 음악을 작곡하는 등 평생 가톨릭 정신을 작품에 담아 전하는 데 힘쓴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이었다.

故 이태석 신부의 제자들 모습을 담은 영화 ‘부활’ 스틸컷.

10월 7일 열린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창립 50주년 기념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전 개막행사.

■ 교회미술 반세기, 그리고 새로운 시도들

올해는 교회미술 반세기 역사를 돌아보는 뜻깊은 해였다. 한국 가톨릭 미술 성장과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서울가톨릭미술가회(회장 안병철, 이하 미술가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았으며,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회장 안병철)도 창립 25주년을 맞이했다.

미술가회는 원래 대대적인 행사와 전시를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전시 규모를 축소했다. 창립 50주년 기념식과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전 ‘하느님, 예술로써 찬미받으소서’는 10월 7일부터 약 2주간 개최했다. 전시에는 전국 15개 교구 가톨릭미술가회 회원과 미국 남가주가톨릭미술가회 회원 등 총 398명이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창립회원 특별전’과 제23회 가톨릭미술상 수상 작가전 작품도 만나 볼 수 있었다. 한국 미술계 원로인 고(故) 이순석(바오로), 고 김세중(프란치스코), 고 권순형(프란치스코), 김태(바오로), 최종태(요셉), 최의순(요한 비안네) 등 교회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창립회원 15인의 작품을 전시했다. 또 제23회 가톨릭미술상 본상 수상작인 이정지(루치아) 화백의 ‘만나’(MANNA)도 수상 이후 최초로 일반에 공개됐다.

아울러 1년 반 동안 교회미술 재정립과 질적 발전을 위해 작업한 「한국가톨릭미술 50년」도 출판했다.

한편 서울 명동 갤러리1898(관장 고승현 수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원로작가 이정지(루치아) 화백 초대전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개최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