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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두 교황의 순례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3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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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 21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쿠바를 최초로 방문했다. 이날 아바나 공항에서 이뤄진 도착 연설에서 교황은 “쿠바는 세계로 문을 열고 세계는 쿠바를 향해 문을 열라”고 말한다. 그리고 1월 26일까지 이어진 사목방문(Apostolic Journey)을 통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쿠바의 개방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오랜 기간 이어진 미국의 대쿠바 경제제재도 비판했다. 당시 미국과 쿠바 갈등은 뿌리가 깊었는데, 쿠바 혁명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피그스만(Bahía de Cochinos)을 침공하기도 했으며, 이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는 미·소가 핵전쟁까지 각오했었다. 평화의 사도로서 26년 재위 기간 동안 110여 국을 방문하셨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 해묵은 대립이 종식되기를 기도하면서 특별한 순례 길을 나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로부터 ‘인권 탄압 국가’로 비난을 받던 쿠바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분명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는 세계 경제에서 배제된 채 빈곤의 굴레에 갇혀 있던 쿠바 민중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었다. 훗날 밝혀진 증언에 따르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진정으로 존경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교황의 쿠바 방문을 앞두고 그의 책과 연설문은 물론 시까지 읽을 정도였는데,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 때에도 카스트로는 3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쿠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야구 경기를 잠정 중단시키는가 하면, 각종 파티와 야간업소 영업을 금지하기도 했다. 쿠바 전체가 함께 슬퍼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쿠바 방문은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역사적인 방문이 있은 지 몇 개월 후에 「요한 바오로 2세와 피델 카스트로의 대화」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식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지만, 동시에 미국의 대쿠바 무역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요한 바로오 2세의 주장도 적극 지지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순례가 쿠바의 문을, 그리고 쿠바를 향한 세계의 문을 완전히 열어 놓지는 못했지만, 2015년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과 쿠바의 화해 과정에서 양국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외교 관계 정상화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롭게 시작되는 2021년에는 한반도와 세상이 더 평화로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혜와 용기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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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