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49)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가는 그리스도인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입력일 2020-12-15 수정일 2020-12-15 발행일 2020-12-20 제 322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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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눔으로 시작된 사랑이 거대한 파도로 이어지기까지
기적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의 마음, 
자기만 생각하던 이기적이고 완고한 마음이 예수님 사랑과 연민을 보면서
조금씩 변하고 주변과 나누게 됐던 과정이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심각해지면서 사람 모이는 활동이 금지되고 집에 머물라는 권고가 많아졌다. 이제는 서로 만난다는 일 자체가 두렵고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 가운데 가난한 이들은 훨씬 더 힘겨운 상황을 맞고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고 무료 급식이나 도시락 배달이 중단되면서 고립되어 추위에 떨고 밥을 굶는 이들, 이른바 한계 상황에 처한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는 단순히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더 개인화시키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CLC는 최근 영등포 쪽방촌을 방문해 도시락 나눔을 했다. 시작은 코로나19로 급식 중단 사례가 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안타까움을 느낀 한 명의 마음에서 출발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그 회원은 본인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음식을 해서 돌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서라도 자비를 들여 도시락을 준비하고 나누려고 했다.

그러다가 다른 회원들과 그런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이에 공감하는 회원들이 늘면서 많은 이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한국CLC 회원이 아닌 분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음식 만드는 역할을 한 사람들도 있고, 쪽방촌에 도시락 전달을 한 사람들도 있고, 반찬 비용을 함께 분담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십시일반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를 했다. 이를 통해 세 번 정도 500명 분의 도시락을 나눌 수 있었다.

앨버트 놀런의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분도출판사)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선한 영향력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외딴 곳에서 날이 저물고 모두가 배고픈 상황이었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소박한 먹거리를 함께 나눠 먹자고 꺼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심하기보다 길 잃고 헤매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더 크셨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자기가 먹으려고 숨겨 두었던 먹거리들을 꺼내서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에게서 시작된 선한 영향력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그 영향력을 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은 나눔에서 시작된 사랑은 거대한 파도로 이어져 수많은 군중을 변화시키고 모두가 배불리 기쁘게 먹을 수 있었다.

기적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수천 배로 변한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의 마음, 자기만 생각하던 이기적이고 완고한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과 연민을 보면서 조금씩 변하고 주변과 나누게 됐던 과정이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두렵고 암울한 세상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도와 가실까 질문해 본다. 결국은 당신께서 아파하시는 것을 함께 아파하고, 당신께서 돕고자 하시는 곳으로 다가가는 이들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하느님의 일하심, 하느님의 구원 작업은 결국 사람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분께 협력하는 이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서 당신 마음을 불러일으키신다. 세상에 대한 희망이나 감사함,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 안타까움 등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시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거신다. 우리는 그런 하느님의 부르심을 잘 알아듣고 응답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은 더 힘들어지고, 사람들은 더 개인화되며, 가난한 이들은 더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세상 속에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절대로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그런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께 협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한 연민과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세상과 나눠 가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두려움 없이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 이후는 하느님께서 기꺼이 도와주실 것이다.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