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64) 무엇을 먹을까?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12-15 수정일 2020-12-15 발행일 2020-12-20 제 322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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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생활 중 양성 단계 때에는 경제적으로 자급자족을 하면서 자체적으로 주방 담당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종신서원을 하고 서품을 받은 후에는 대부분 주방 봉사자 분들이 계신 공동체에서 살았기에, 주방을 맡지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지금 다시, 형제들과 교대로 주방을 맡아서 식사 준비를 하는 공동체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서 살 때는 1시간 혹은 30분 전에 주방에 들어가서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뭘 해 먹지?!’ 때론 식사 준비를 하기 싫어 라면이나 간편하게 조리해서 먹을 걸 찾으며… 그렇게 한 끼 한 끼를 때우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살고 있는 신부님과 오전에 작업을 하다가 근처에 있는 성지로 물건을 날라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때마침 식사 시간이 걸렸고, 점심을 먹고 성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일 끝내고 돌아와서 먹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일을 다 마친 후 식사할 생각을 했고 우선 성지로 물건을 날랐습니다. 물건을 싣고 차로 20분 정도를 달려 성지에 도착했더니, 성지 주차장에 차량 2대가 보였습니다. 순례를 마친 후 떠나는 차량인듯 했습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순례오신 분들께 반갑게 인사를 드렸는데, 그분들이 오히려 더 우리를 반기면서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함께 식사하러 가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우물쭈물했지만 속으로는 ‘아싸!’하고 탄성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못이기는 척 그 분들을 따라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날 점심은 그렇게 해결했습니다. 점심식사 후 성지로 와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수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도원에서 점심을 먹고 성지에 왔다면 어쩔 뻔 했나, 흐흐흐.’

그날 오후였습니다! 4시 정도가 되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도원 근처에 사시는 부부인데,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겁니다. ‘야호!!!’ 그래서 그 분들과 5시30분에 만나 근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가 무작정 수도원으로 전화를 해서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자매님께서 아프셨고, 병원 진료를 계속 다니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답니다. 그리고 그날 최종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는 ‘경과가 좋다’면서 몸 관리를 잘한 후 1년 뒤에 다시 보자고 말했답니다. 바짝 긴장한 채 병원에 갔다가 경과가 좋다는 말에 그 부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 다짜고짜 수도원에 전화를 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 사연을 듣고 자매님께 진심 축하를 드리면서…, 그 날 저녁 식사도 그렇게 해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식사 당번 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으면, 어느 날은 수도원 문 앞에 김장김치가 있었고 어느 날엔 누군가 10㎏ 쌀포대를 두고 가셨습니다. 어떤 날에는 문 앞에 바지락이, 그 다음 날엔 조개의 일종인 동죽도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음 선하고 따스한 교우 분들을 선물로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묵상하게 됩니다. 주방에 들어갈 때마다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주방에 들어갈까’를 생각하기로…. 놀라운 건, 정성된 마음으로 주방에 들어가면 주방에서 생명 있는 먹거리들이 숨 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내 자신을 성찰해 봅니다. 원래 밥하고, 바느질하고…. 이런 생활을 살고자 수도생활을 선택했는데, 그 동안 주방 봉사자 분들이 차려준 식탁에 앉아 그저 먹는 것에만 익숙해진 나를 보게 됐고, 나도 모르게 내 삶의 한 부분을 누군가에게 맡겨 놓고 살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점차 주방에 들어가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원래 내 삶을 찾은 듯 합니다. 문득,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식탁 봉사자들에게 희년의 기쁨이 전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