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비웠느냐? 그럼 내가 채울 것이다 / 권수영

권수영(스콜라스티카),(제1대리구 동탄영천동본당)
입력일 2020-12-15 수정일 2020-12-15 발행일 2020-12-20 제 322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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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일 년에 여러 차례 특히 환절기에는 목이 아팠다. 며칠 그러다 잦아들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길어지면서 기침이 심해지는데 몰려오는 두통에 온몸이 쑤시고 계속되는 기침과 가래로 고통받는 날이 이어졌다. 난감한 일은 이런 길로 빠지면 대책이 없다는 거다. 양약도 한약도 듣지를 않는다. 그래서 목이 아프면 더럭 겁부터 났다. 꼬박 앓는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천식으로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기침에 또 기침을 하다 보니 아예 앉아서 잠을 청하는 날로 이어졌다. 가슴이 아릴 만큼 기침을 하고 말도 안 나오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 룩스메아(자녀를 위한 부모기도 모임) 피정에 갔다. 치유를 청하며 기도하는데 말씀 카드를 뽑을 차례가 되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집회서 38장 9절 말씀이다. “얘야 네가 병들었을 때 지체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여라. 그분께서 너를 고쳐 주시리라.” 순간 “예수님 제가 몇 달 동안 얼마나 기도를 드렸는데요. 고쳐 주시기는커녕 침묵만 하시고 순 뻥쟁이 이십니다”라고 볼멘소리를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약한 몸과 그간의 기도, 지쳐있던 심신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 내려왔다. 그런데 그 순간 어릴 적 아버지 말씀이 섬광처럼 나타났다. ‘동물들은 병원이 없으니 숲에서 몸이 아프면 먹지 않는다. 그것으로 치유가 된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묵주기도 20단을 드리고 물만 먹고 일주일을 보내기로 하였다. 이것은 내가 먹은 마음이 아니라 강력하게 내 마음을 울리는 소리였고 따를 수밖에 없는 무게가 느껴지는 준엄한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배고픔과 기침 속에서 음식까지 안 먹으니 쉬고 싶고 먹고 싶고 늘어지고 첫날은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녔다. 그런데 다음날에는 두통이 사라지더니 거짓말처럼 기침까지 싹 사라졌다. 여전히 목소리는 안 나왔지만 몇 달 만에 누워서 기침 없는 통잠을 잘 수 있는 밤을 보냈다. 셋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에! 목소리가 나왔다. 주님의 치유로 모든 기능은 정상으로 회복되고 편안해졌다.

주님께서는 커피믹스와 과식으로 지친 내 몸에 휴식을 명령하시고 비우라 하셨다. 그리고는 주님의 방식으로 치유해 주셨다. 단식하는 동안 기도가 없었다면 가족을 위해 밥을 준비하고 일상을 살며 굶주림에서 오는 예민함과 화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염치없게도 주님 앞에 매일 지저분한 것만 내놓고, 맡겨놓은 사람처럼 달라고만 하는 내게 따끔히 혼도 내실 법 하건만, 늘 부드럽게 안아주시고 쉼을 주신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우왕좌왕할 때 나는 일단 끼니를 멈추고 십자가 앞으로 간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만나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끝>

권수영(스콜라스티카),(제1대리구 동탄영천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