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48) 열두 번째 받은 소중한 선물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0-12-08 수정일 2020-12-08 발행일 2020-12-13 제 3223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비우면 비울수록 채워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

2020년 1월 초 꾸르실료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다. 가톨릭신문에 ‘생활 속 영성 이야기’라는 기획 연재에 나의 글을 기고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꾸르실료 정신인 ‘순종’이 떠올라 “예!”하고 대답하였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되어 며칠을 기도하면서 지혜를 주십사 청하였다. 기도 중 떠오른 것은 남편이 뇌출혈로 인해 2년간 투병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신비를 조금씩 체험해 가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한 번이면 되는 기고인 줄 알고 시작한 나의 생활 속 영성 이야기가 벌써 열두 번째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영성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1년을 되돌아보니 지나온 시간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큰 선물을 열두 번이나 주셨음을 새삼 깨닫고 감사를 드린다. 스물아홉이 된 딸아이는 작년 겨울 가죽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예정된 과정을 마치지 못한 채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심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몇 달간의 학비와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만을 어렵게 요청하며 서울로 올라갔다.

유학을 다녀오면 엄마에게 더 이상의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으리라 계획했던 다짐과는 달리, 끝도 보이지 않는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된 딸아이는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학원에 다니며 매일 5시간도 못 자고 작업실에서 가죽과 씨름하며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그 무거운 마음을 표현이라도 하듯 틈틈이 가방을 만들어 보내 주며 “앞으로 엄마 가방은 내가 평생 책임질게. 나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조금만 더 고생해. 미안해”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딸에게서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말만 들어도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비록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지만 나는 내 딸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 드렸고, 주님의 계획대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만을 기도드리고 있다.

이렇게 두 계절이 지나고 학원의 정규 과정을 마치고 어렵게 취업을 한 어느 날,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하는 이야기 들으면 엄마 깜짝 놀랄걸? 나 지금도 완전 소름이야! 있잖아. 내가 엄마 덕분에 취직됐어. 내가 가죽 계통으로 무경험자이다 보니 채용할 때 대표님께서 많이 고심하시면서, 과연 이 지원자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던 사람일까? 궁금해 검색했더니, 가톨릭신문에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나의 이야기가 실린 엄마 글이 나오더래. 그 글을 읽으시고 대표님께서 ‘음. 이런 부모님의 자녀라면 경험이 없지만 채용해도 되겠구나 하셨다고. 완전 소름이지? 이젠 진짜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아. 대표님께서 실망하지 않으시게 열심히 할게. 엄마에게 정말 고맙고, 진짜 하느님의 신비를 이렇게 또 깨닫게 해 주신다.” 딸과 통화 후 너무나 감사해서 주님께 곧바로 기도드렸다.

살아오면서 가끔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힘들 때 동생 수녀님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기도를 해줄 때마다 들려주시는 말씀이 “사랑하는 나의 딸아! 너의 삶은 너의 삶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나를 위로하는 삶이었다. 지금처럼 너 자신을 온전히 나에게 봉헌해 다오. 그 고통이 또한 너의 자녀에게 밑거름이 되어 마리아가 내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아이로 내가 마리아를 축복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 죄인이 뭐가 그리 귀하다고 이렇듯 넘치는 축복을 주시는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7년간 피아노 공부를 하면서 좌절과 기쁨을 느끼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던 딸을 보면서 주님께서 나를 믿고 맡기신 만큼 부모로서의 욕심과 세상의 힘이 들어가지 않으려 비우고 또 비우며, 주님께 의탁했다. 주님의 딸이니 좌절도 실패도 주님의 계획 안에 있으며 그로 인해 주님 안에서 더 튼튼해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라고 기도할 뿐이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어리석었던 나에게 다가와 문을 두드리셨고 언제나 새로운 선물을 준비하고 서 계셨다. 나는 그저 나의 문을 활짝 열고 모든 것을 믿고, 주님께 의탁하며 기쁘게 맞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