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가까이 오셨다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입력일 2020-12-08 수정일 2021-11-26 발행일 2020-12-13 제 322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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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
제1독서(이사 61,1-2ㄱ.10-11) 제2독서(1테살 5,16-24) 복음(요한 1,6-8.19-28)
 구원자이시며 또한 빛이신 주님 오시기에 큰 기쁨 넘치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그 분을 기다리는 시간은 은총과 같은 것
 하느님 말씀 통한 창조, 소리를 통해 큰 변화 일으키는 동력
 어두운 땅 밝혀주시는 주님 사랑의 신비 마주하는 성탄 되길

이념과 원칙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개혁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체제와 낡은 통념, 시대적 착오를 전복시키는 힘은 사랑과 그로 인한 자발적 증언에서부터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러한 힘을 혁명이라고 부르고 신앙의 영역에서는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가장 정치적인 힘이며 사회적 영향력인 동시에 외부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 사랑이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주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는 것’(제1독서 참조)일 때, 그 사랑은 어떤 역량보다 강력하게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게 됩니다. 대림 제3주의 전례 본문들은 이러한 기쁨과 희망으로 오시는 구원의 빛을 기다리며 환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오심으로 캄캄하고 숨 막히던 공간은 이제 밝은 빛 속에 날아다닐 듯 가볍게 호흡하고 생동하는 기쁨의 시대로 변하게 됩니다.

■ 복음의 맥락

대림 제3주는 ‘기쁨의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기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제의 제의도 자색이 아닌 장미색(분홍)으로 대체되고, 제대 주변도 화려하게 꾸며집니다. 전례 중에 선포되는 본문들도 ‘기쁨’이라는 주제로 관통되어 있습니다. 입당송부터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라는 환호가 울려 퍼지고, 제1독서도 ‘메시아의 사명’을 언급하면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환호합니다. 화답송은 “내 영혼이 내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네”라는 성모님의 노래가 불려지고 제2독서 역시 기쁨을 품고 사는 것이 곧 하느님의 뜻임을 선언합니다. 이러한 기쁨은 구원자이신 분의 오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빛이신 분이 오시기에 그토록 기쁠 수 있는 것입니다.

■ 기쁜 소식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를 ‘빛’으로, 세례자 요한을 ‘그 빛에 대한 증언자’로 소개합니다.(요한 1,6-8) 대림 시기가 시작되면서 켜지기 시작한 대림초는 ‘빛’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초를 하나씩 밝힘으로써 주님의 도착이 거의 임박했음을 알려줍니다. 특별히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을 ‘빛’으로 착각할까봐 스스로의 신원을 “서슴지 않고”(20절) 고백합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이어 엘리야도, 예언자도 아니라고 하면서 분명한 선을 긋습니다.(19-22절) 자신은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23절)라고 하는데 이때 ‘소리’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포네’이며, 특별히 ‘외치다’라는 그리스어 동사 ‘보아오’와 함께 사용됨으로써 어떠한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공표하기 위해 크게 지르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소리’에 대한 내용은, 바로 전에 언급된 부분(1,1-5)과 함께 읽을 때에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1,1-3) 요한복음서의 시작이기도 한 이 부분은 ‘말씀’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요한은 ‘소리’이지만 그리스도는 ‘말씀’이심을 명백히 선언하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말씀’에 해당되는 그리스어는 ‘로고스’이며, 이 단어는 우선적으로 어떤 것에 대한 ‘말’을 의미하지만 ‘사건’, ‘일’이라는 뜻까지 포함합니다. 그 ‘말’은 언제나 ‘사건’과 ‘일’을 구체적 결과로 가져옴을, 즉 ‘말씀’은 어떤 일이나 사건을 발생시켜 삶의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창조하는 기능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단순히 ‘소리’만이 아니라 그 소리를 통해 실현되는 사건이고 변화를 일으키는 살아있는 동력이며 창조적인 일입니다. 말씀을 통한 창조는 지금 우리들 안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이기에 요한은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26절)라고 선언합니다. “말씀”이신 분은 당신 자신을 통해 주변을 진정으로 존재하게 하시고 변화를 통한 새로운 창조에로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런 창조주이신 ‘말씀’을 “내 뒤에 오시는 분”(27절)으로, 그리고 자신은 그 말씀을 선포하는 ‘소리’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로 알로리 ‘요한세례자의 설교’ (1601~1603년)

■ 하느님의 영이 주는 기쁨

복음에서 요한이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규정하면서 인용한 본문은 이사야 예언서인데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한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새롭게 ‘기름 부어’ 축성한 메시아를 소개하는 본문으로서, 그 특성은 그 위에 “하느님의 영”이 내렸다는 것입니다.(이사 61,1) 즉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가 하는 모든 일은 ‘성령’이 그에게 내려 이루어짐을 먼저 선언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와 함께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2절)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영이 함께할 때 이러한 위대한 해방이 가능한 것이고 그럴 때 누구도 두렵지 않고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강력한 하느님의 통치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라고 권고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감사는, 또 다른 기쁨의 은총으로 우리 안에 간직되며, 그래서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은 당연히 기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외치는 ‘소리’만 울려 퍼지던 광야는, 진정한 생명의 창조적 힘을 가진 ‘말씀’이 오심으로써, 아름다움과 풍요가 가득한 곳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랑이 발생하고 그 사랑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다가오면 주변이, 어제와 똑같던 그 주변이 급속도로 달라 보이듯이, 광야는 풍요와 빛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둠과 불안, 치욕과 분노를 전복시키는 힘은 복음이신 ‘말씀’의 오심으로만 가능한 사건입니다.

거의 일 년간 우리 삶의 언저리를 위협하며 전방위적으로 지구촌 전체를 고통과 결핍, 불행과 무력감으로 밀어 넣은 이 사태 속에서 우리 존재와 마음을 가득 채우는 빛, 그 사랑의 신비를, 견고한 행복한 활짝 핀 웃음으로 마주하는 성탄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동안 ‘말씀묵상’을 집필해 주신 김혜윤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