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62) 기도하도록 만들어진 사제(?)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
입력일 2020-12-01 수정일 2020-12-02 발행일 2020-12-06 제 322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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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에서 인사이동이 있었고, 전라도 지역의 공소로 발령을 받은 후의 일입니다. 짐을 싸서 공소로 내려와 일주일 동안 정리 정돈을 마친 후 공소 신자들과 공식적으로 만나는 주일이 됐습니다. 공소 미사는 평일엔 오전 7시 한 대, 주일에는 오전 7시와 오전 10시, 두 대 미사가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주일 오전 7시 미사 때에 교우 분들에게 정식으로 내 소개를 드렸고, 신자들의 따스한 눈인사로 환영을 받았습니다. 미사 후 내 방으로 돌아와 잠시 쉰 다음, 10시 미사를 봉헌하려고 15분 전에 공소 성당에 들어갔더니 교우 세 분이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생각했습니다.

‘오전 7시 미사 때에는 이십 여명의 교우 분이 왔었는데, 음…. 10시 미사에는 몇 분 안 오시는가 보다!’

미사 시간 5분 전, 슬슬 제의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해설 자매님의 ‘입당송’ 멘트가 나오면 제대로 입장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지금부터 묵주기도를 바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지향은 코로나19 종식을 위하여… 공소 교우 분들을 위하여…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 나는 또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공소 교우들은 묵주기도 1단을 바치고 미사를 봉헌하나 보다!’

이왕 제의를 입은 나는 자리에 앉아서 교우 분들과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1단을 마치면 미사를 시작할까 생각했지만, 2단, 3단, 4단, 5단 – 다 바쳤습니다.

‘묵주기도도 다 바쳤으니, 이제 곧 미사 시작 안내가 나오겠군!’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교우 분들은 미동도 없이 조용히 앉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해설 자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성당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분이 지금 어디를 가는 걸까…. 아하, 공소 마당에 종이 있던데 이제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을 치러 가는구나.’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자매님은 다시 성당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 후 신자 분들이 계속해서 성당에 들어왔고, 일곱 분에서 열 분, 그리고 열다섯 분 정도의 교우 분들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나는 또 생각을 해 봅니다. ‘이상하지! 10시 미사라고 해서 준비를 했는데 혹시 10시가 아닌가…. 그렇다고 처음 뵙는 교우 분께 제의를 입은 상태로 다가가 미사 시간을 물어 보는 것도 조금은 이상하고! 그래서 혹시 미사 시간을 적어 놓은 메모 등이 있겠지.’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두리번거리며 찾아도 그 어떤 메모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순간, ‘그래, 맞다. 공소 현관문 앞에 공소 미사 시간이 적혀 있었지. 그걸 확인해 보자.’ 나는 공소 신자 분들이 조용히 묵상하고 있는 그 틈을 이용해 제의를 입은 채 신발을 신고 밖을 나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사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현관 문 앞에는 공소 주일 미사 시간은 오전 7시와 오전 10시 30분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미사 시간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부끄러운 마음을 몰래 감추고 태연한 척 성당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고, 이윽고 ‘입당송’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를 다 마친 후 공소 마당에서 처음 만난 교우 분들과 눈인사를 나누는데, 그분들이 나를 보는 표정이 ‘무한 존경의 눈빛’이었습니다. 마치 앞으로도 계속 미사 시간 30분 전에 제의를 차려 입고 자신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자는 마음이 듬뿍 담긴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신부님이 오셔서 너무 좋아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움찔했습니다.

공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의 착각으로 인해, 앞으로 기도하는 신부로 만들어지는(?) 분위기를 생생히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착각이 사람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