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바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손’입니다” 최근 무료급식 중단하는 곳 많아져 안나의 집 이용자 100여 명 더 늘어 자원봉사자들 발길 꾸준히 이어져 600명 넘는 노숙인에 도시락 대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는 많은 것을 앗아갔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하느님께서는 한 쪽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을 더 넓게 열어 두신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서로를 멀리하게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오히려 영혼들이 가까워지는 계기로 삼으라고 하신다. 고난의 시대,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왔듯이,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끌어 줄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빛나는 별들을 찾는다.
■ “내가 너를 만들었단다!” 코로나19로 많은 무료급식소들이 문을 닫았다. 그 와중에도 하루도 멈추지 않고 매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한 끼 식사를 차리는 성남 안나의 집. 이 곳을 책임지고 있는 김하종 신부(오블라띠 선교수도회)는 여전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9월 어느날 루카복음 제9장 ‘참 행복’을 읽으며 고민에 빠졌다. 주린 배를 움켜쥔 노숙인들에게 “당신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잠깐의 묵상으로 김 신부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묵상글이 떠올랐다. “얇은 옷을 입고 추위에 떠는 어린 여자아이는 밥을 못 먹어 굶기까지 했지요. 그래서 화가 나서 신께 말했습니다.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면서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나요? 묵묵부답이던 신은 어느날 밤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널 만들었단다.’” 하느님은 봉사자들을 만들었다. 가난하고 굶주리며 우는 이들에게 옷을 벗어주고 먹을 것을 내어주며 그 마음을 위로해 주라고. ■ 도시락 650개 만들기 하루 확진자 수가 며칠째 300명을 넘어서던 11월 19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 118 안나의 집에는 20명 넘는 봉사자들이 도시락 650개를 만들고 있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쌀밥에 푸짐한 돼지뼈찜과 밑반찬들이 맛깔졌다. 김하종 신부가 소리쳤다. “오늘은 도시락보다 먼저 싸야 할 게 있어요! 환절기에 날이 추워지니까 약이랑 마스크를 챙겨야 해요. 그거부터 포장합시다! 비타민은 무거우니까 맨 밑에 넣으세요!” 네 줄로 늘어선 봉사자들은 비타민과 감기약, 파스와 마스크를 봉투 하나에 담았다. 자세를 잡고 시작한 지 불과 20분 남짓에 작업이 끝났다. 곧이어 하얗게 김이 오르는, 금방 지은 밥을 푸짐하게 담고 각종 반찬과 돼지뼈찜 등으로 하나씩 도시락을 만들었다. 메뉴는 매일 바뀐다. 김 신부는 인터넷으로 그날그날의 메뉴를 공지한다. 오전에 대부분 음식 장만이 마무리된다. 코로나19가 극심하지 않을 때에는 봉사자들이 같이 도왔지만 요즘은 직원들이 주로 맡는다. 오후 1시부터 포장을 시작해서 3시경이면 인근 성남동성당 주차장에 꾸려진 배식소에서 ‘손님’들에게 도시락이 전달된다. 도시락 650개 꾸리기가 쉽지는 않다. 처음 봉사하는 이들은 팔다리가 결리기도 할 법하다. 하지만 이미 숙련된 봉사자들은 두 시간 남짓 안에 깔끔하게 개별 포장을 끝낸다. 잠시 인터뷰를 위해 열에서 벗어난 봉사자 자매가 투덜거린다. “기자님 때문에 내 일거리 뺏겼잖아요.” 죄스러움에 잠시 자리를 비켜 집밖으로 나서니 벌써 수십 미터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먹을 곳이 없어졌다
안나의 집 오현숙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이후에 안나의 집을 찾아오시는 분이 100여 명은 더 늘어났다”며 “감염 위험 때문에 다른 급식소들이 운영을 못하는 사례들이 많아서 그런 듯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도시락이나 주먹밥 등 대체 급식을 하던 곳들도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활동을 다시 접은 곳들이 많다. 그래서 안나의 집에는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오기도 한다. 안나의 집에서도 봉사자들이 줄어드는 등 영향은 있었지만, 그래도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봉사자들이 찾아와 손을 보태니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감염 위험을 우려한 주위의 시선이 어렵긴 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더할 때마다 민원이 들어가고 관공서 직원들이 방문했다. 이발소, 샤워실, 옷 나눔, 진료소 등 다른 활동은 접었고 남은 건 오직 급식뿐이다. 지난 3월 어느 날, 김하종 신부가 쓰레기를 버리려고 길을 건너는데, 몇몇 주민들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당신이 이 동네에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어요. 당장 음식 나눠주는 거 멈추세요!!” 김 신부는 그때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위험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틀 뒤 자원봉사자 48명이 찾아왔어요. 각자 자기 두려움을 접어두고요. 저도 무섭고 두렵지요. 그런데 ‘두려움’의 반대는 ‘용기’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누구나 두렵지만 믿음으로 희망을 품고 내어줍니다.” 그는 “날마다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사랑하러 오는 봉사자들은 놀랍고 신기한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뜨겁던 8월 어느 날 또 다시 동네분들 몇 분이 경찰과 함께 찾아와 “멀쩡한 사람들에게 왜 밥을 주느냐?”고 따졌다. 쉽지 않다.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