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어디 저 산이 나 혼자 즐기라고 있는 건가요 / 김형태

김형태(요한),변호사
입력일 2020-11-24 수정일 2020-11-24 발행일 2020-11-29 제 322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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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산길은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풀썩풀썩 일었습니다. 잎새들은 단풍이 드는가 싶더니 다 말라 오그라졌구요. 그래도 유행병 때문에 활동을 못해 답답한 사람들로 산은 온통 북새통이었습니다. ‘아니, 왜 갑자기 이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십여 명의 무리가 한 줄로 가질 않고 나란히 길을 막고 가거나 아예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먹고 떠드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내내 저 북적이는 사람들이 밉더군요.

하지만 어디 이 산이 나 혼자 고독을 즐기라고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저 이들도 내가 없었다면 고즈넉이 산길을 걸을 수 있을 터. 내 이기심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오래 전 매일 새벽미사를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깜깜 새벽 영하 십몇 도의 추위 속 성당에 갔는데 내가 늘 앉던 자리에 웬 사람이 앉아 있는 거였습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다른 이를 나만큼 사랑하게 해 달라고 빌러 간 바로 그 순간에도 내 자리를 ‘뺏은’ 저 사람을 미워하고 앉았으니 참…. 바오로 사도도 ‘나는 과연 비참한 사람이로구나.’라고 했던가요.

“그 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로 시작하는 산상설교에서 이리 가르쳐 주셨지요. 악인이건 선인이건 의로운 이건 불의한 이건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그러니 우리 모두는 한 형제라고.

불가의 화엄사상도 비슷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만물의 이치인 ‘이’(理)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만물 개체들은 ‘사’(事)라고 합니다. 이사무애(理事無碍), 사사무애(事事無碍)라. 하느님과 만물 사이에는 걸림이 없이 하나요, 이 세상 만물들도 서로 서로 걸림이 없이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천지동근(天地同根)이요, 만물일체(萬物一體)라고도 합니다. 천지만물이 같은 뿌리 하느님에서 비롯됐음이요, 그래서 모든 개체들이 하나라는 뜻인데 예수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지 않습니까.

사실 천지동근, 만물일체라는 말은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글귀를 중국 후진시대 승조법사가 몇 글자 바꾼 겁니다. 본시 「장자」에는 “천지여아병생(天地與我竝生), 만물여아위일(萬物與我爲一)”이라 돼 있는데, 천지가 나와 더불어 생긴 것이요,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장자, 예수님, 불가의 화엄사상이 차례로 장소를 달리해 같은 가르침을 펴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도 똑같은 설명을 하고 있지요. 137억 년 전 ‘절대 무(無)’에서 빅뱅이 일어나 수소, 헬륨 순으로 원소들이 생겨나고 원소들이 뭉쳐서 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46억 년쯤 전 지구가 생긴 이래 35억 년 전 최초의 유기질 세포 하나가 출현해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사람을 비롯한 모기며 돼지며 나무와 풀들, 코로나바이러스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아침에 내가 먹은 쌀이며 고등어, 내가 산을 오르며 밟는 나뭇잎, 저 건너편 계곡 잎을 다 떨군 참나무들이 수만 대(代)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단세포 하나’를 같은 조상으로 두고 있는 거랍니다. 저 나뭇잎도 내 형제, 먹이 찾아 겨울 산을 쏘다니는 가여운 저 길고양이도 내 형제, 먼지 풀썩이며 앞을 막고 가는 저 사람들도 내 형제. 이때 ‘형제’란 말은 그저 하나의 은유가 아니고 진짜로 피를 나눈, 아니 유전자를 나눈 진짜 형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에서 갈라져 나와 이 세상에 개체로 살아가는 한,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밉고 또 내가 살기 위해서는 돼지를 잡아먹어야 합니다. 그래도 이 개체들이 같은 뿌리 하느님에게서 나와 같은 피를 나눈 한 형제란 것이니, 우리는 그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노력을 하여 다른 개체들을 형제로 대할 일입니다. 참 힘든 나와의 싸움이지요.

그렇습니다. 어디 저 산이 나 혼자 즐기라고, 저 새벽 성당 앞자리가 나 혼자 앉아 거룩함을 입으라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