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60) 영원히 마르지 않을 눈물(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11-17 수정일 2020-11-17 발행일 2020-11-22 제 322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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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추석날의 일입니다. 그날 오후에 제주도가 고향인 어느 부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오늘 저녁에 별일 없으면 저희 집에 오셔서 미역국에 고기산적으로 식사 같이 해요.”

순간 ‘앗, 제주도 음식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합동 위령 미사 후에는 별다른 일도 없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내가 도착하자 가족들 모두가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주고받았고, 추석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자매님은 저녁 밥상을 제주도 음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심지어 귀한 제주 고사리까지 상에 올려서, 맛의 담백함도 가미했습니다.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환담을 나누던 중 그날 아침에 있었던 제사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형제님께서 눈물을 주르륵–흘렸습니다. 그 옆에 앉은 나는 ‘이게 뭔 상황이지!’ 당황하고 있는데, 자매님께서 내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제사 이야기만 나오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리워 저렇게 눈물을 흘려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니 돌아가신 분이 그립다면, 음…. 부모님이 그리울 텐데! 혹시 형제님께서 어릴 때 할머니 품에서 크셨어요?”

나의 질문에 형제님은 눈물만 흘렸고, 자매님은 남편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희 남편이 어릴 때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남편과 그 밑의 여동생 둘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답니다. 할머니께선 손주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부모 없는 아이라고 기가 죽어지낼까봐 정말 어머니 이상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셨죠. 손주들이 학교 다닐 때 공부들을 잘 했는지, 할머니께선 손주들 학비를 대려고 갖고 계신 밭이랑 땅들을 하나씩 하나씩 파셨다고 합니다. 그 후 손주들이 제주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자, 할머니께선 제주도 시골의 산간마을 생활을 잠시 접고 제주시에서 손주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돌보아 주었고요.”

“할머니 너무 훌륭하시네요. 정말 할머니가 그립겠다.”

훌쩍이는 형제님을 보니 내 마음도 짠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남편 역시, 할머니께 잘 했어요. 특히 남편이 고등학교 때 백일장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글에는 할머니를 향한 남편 마음이 담겨 있었어요. 이런 내용이래요.

‘나는 지금 형편이 어려워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효도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다음에 꼭 성공해서 할머니께 받은 은혜를 다 갚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할머니께 좋은 옷을 입혀 드려도 너무 늙으셔서 예쁘지도 않을 것이고, 좋은 음식을 대접해 드려도 이가 다 빠져 드시지도 못할 것이고, 세상의 좋은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다리가 아파 잘 걸으시지 못할지도…. 부모님께 효도는 지금 하세요. 이 순간 당신 사랑의 마음을 전해 드리세요.’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 그 상장을 할머니께 보여 드렸더니, 할머니께선 춤을 추듯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해요.”

“할머니를 향한 형제님의 마음도 대단했네요.”

“아무튼 우리 남편과 여동생들은 헌신적인 할머니의 모습이 고마워서 다들 열심히 살았고, 특히 남편은 서울에 있는 S대학에 합격도 했어요. 남편이 대학에 입학할 때에는 제주도 시골 할머니가 혼자 서울로 올라와서 입학식에 참석할 정도로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고 하셨답니다. 그 후 할머니께선 당신이 가지고 계신 모든 것들을 다 팔아서 손주들의 대학교 학비와 생활비를 대셨어요. 그래서 다들 잘 커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던 거구요. 오늘 같이 좋은 날, 우리 남편과 할머니 이야기만 해서 그런데 음…, 남편이 대학 다닐 때에 할머니를 위해서 했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 들어 보실래요?”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