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사랑한다면 우리 마님처럼 / 권수영

권수영(스콜라스티카) (제1대리구 동탄영천동본당)
입력일 2020-11-17 수정일 2020-11-17 발행일 2020-11-22 제 322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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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님’이라 부르는 우리 엄마는 오 남매 종갓집 맏며느리다. 한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숙모를 비롯하여 사촌 동생까지 14명이 같이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엄마 하면 사랑, 희생, 나눔, 기도, 노동, 고단함 등 단어들이 떠오른다. 거의 매달 지내는 제사에 찾아오는 친척들 청소에 빨래에 음식 준비로 종일토록 쉬지 않고 분주히 일하시는 모습. 엄마는 그렇게 사셨다. 그 와중에도 우리 마님은 늘 기도를 하셨다.

매 순간 모든 삶이 기도였다. 틈틈이 성경도 읽고 사말의 노래를 틀어놓고 빨래며 집안일을 하시고 저녁때면 성모님 앞에서 묵주기도를 하신다. 얼마나 육신이 지쳐있는지 이내 바로 고개를 떨구며 기도하시는데 우리가 들어가서 주무시라고 해도 끝끝내 앉아서 다시 기도를 시작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엄마는 옷도 단출했다. 우리 형제들의 졸업사진마다 같은 오버를 입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급기야 옷에 있던 모직 코트 본연의 모직은 모두 날아가 야들하고 옷소매도 다 터진 것을 꿰매 입기까지 하셨다.

그렇게 아끼고 또 아끼는 살림살이를 하셨지만,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선뜻 학비를 내주시기도 하고 늘 숨은 곳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 주기를 마다하지 않고 사셨다. 동생들이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자 주변에서 물었다. 어떤 과외와 학원을 보내 공부를 했는지 묻는 말에 특유의 경상도 말투로 “밥만 끓여 줬어예~”하시며, 우리에게 ‘신경도 못 써준 것이 너무 미안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누워 계실 때 매일 색다른 죽을 따끈히 끓여 드리고 그 방에서 직접 주무시면서 밤에도 수발을 들었다. 엄마의 고통은 지독한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기댈 친구가 되고 위로의 손이 되어 주었다.

엄마는 지금도 매일의 대부분을 기도와 봉사로 보내신다. 이 기도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축복의 기도이다. 아픈 사람, 힘든 사람, 고단한 세상사에 지친 사람과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신다. 바보처럼 손해만 보고 사신 우리 마님은 과연 지금 어떠신지 물었다. ‘기도도 하고 운동도 하며 아빠와 가끔 아이스크림도 나누는 일상에 주님의 축복이 차고도 넘친다’며 해사하게 웃으신다.

가족을 온전히 이끄는 힘은 엄마의 기도에서 나온다. 엄마가 뿌린 희생과 사랑이 우리 가족에게 자양분이 되었고 지금도 우리를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다. 주님께서는 엄마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천상 양식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 양식을 받아먹고 길을 찾고 길동무를 만나며 따뜻하게 자랄 수 있었다. 배움이 더 필요한 엄마인 나는 아이들을 키우다가 쉽게 화도 나고 관계 속에서 손해 보기 싫어서 내 것을 챙기고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내 가슴속에서 요동치며 나를 깨우는 소리가 있다.

‘사랑한다면 우리 마님처럼.’

권수영(스콜라스티카) (제1대리구 동탄영천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