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59) 딸꾹질과 묵주기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11-10 수정일 2020-11-10 발행일 2020-11-15 제 321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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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묵주기도 성월을 맞이할 때면, 묵주기도의 횟수를 늘리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곤 합니다. 그리고 매번 10월 7일, ‘묵주 기도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이 되면 평소 때보다 묵주기도 한 꾸러미를 더 바칠 것을 결심하며, 신자들에게도 은근히 강조합니다. 그러던 중 올해 10월 6일 저녁이었습니다. 가볍게 딸꾹질을 하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숨도 참아보고, 혼자 경기 들린 사람처럼 놀라도 보고, 몸을 숙인 채 천천히 물을 마셔 보았습니다. 그러다 효과가 있어 딸꾹질이 멈출 만하면 또 하고, 멈출 만하면 또 하고…. 밤 10시가 넘도록 딸꾹질은 계속됐습니다. 그러다 밤 12시, 새벽 1시, 새벽 2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딸꾹질을 멈추려고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마신 것이 잠을 못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딸꾹질이 멈추는가 싶어서 잠이 들려하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야 했고, 그렇게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또 다시 딸꾹질을 하고. 딸꾹질이 멈추면 화장실을 가고, 그러다 보니 거의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잠을 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잠을 못 잔 것도 아닌 상황! 머리는 몽롱한 상태가 됐습니다.

그래도 그날 오전 10시의 본당 미사는 드려야했기에 방에서 하느님께 기도하며 목놓아 외쳤습니다. ‘주님, 미사 드릴 동안만 딸꾹질을 멈추게 해 주세요.’ 그런데 진짜로 신기한 건 10시 미사를 집전할 때엔 딸꾹질이 멈춘 겁니다. 그래서 미사를 가까스로 봉헌했고, 강론 중에 ‘오늘은 묵주기도의 성모님 기념일이니 묵주기도를 한 번이라도 더 바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미사를 잘 마치고, 제의방에 들어서자마자, 하느님은 내 기도를 어찌 이리 정확하게 들어 주셨는지…. 또 다시 딸꾹질이 시작됐습니다.

그날 딸꾹질은 저녁때까지 계속됐고, 딸꾹질도 스스로 지쳤는지 어느덧 밤이 되자 진정될 기미가 보였습니다. 너무 지치고 피곤한 나는 일찌감치 누웠는데…. 글쎄, 근래 들어 처음으로 잠을 푹 – 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딸꾹질은 자연히 멈춰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평소 미사 전에 성모님께 미사를 잘 봉헌할 수 있도록 옆에 계셔 주십사 청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쳐왔었는데. 그 전날은 묵주기도를 바치지 못했고, 뿐만 아니라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이라 신자들에게는 묵주기도를 한 번이라도 더 바치자고 말은 했지만 정작 나는 한 단도 바치지 못했습니다.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치지 못했다고 밀려오는 이 죄책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왜 기도 때문에 죄책감을 갖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겉으로는 성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쳤지만, 속으로는 기도의 의무감과 묵주기도의 횟수에만 집중되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나는 매일 묵주기도를 몇 단 이상씩 바치는 열심한 신앙인이라는 생각에 갇혀, 율법주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피로가 쌓여 몸의 과부하 신호로 딸꾹질을 심하게 하자, ‘나를 돌보지 않는 나’를 보시고 성모님께선 나에게서 묵주를 빼앗아 가신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성모님께서는 딸꾹질로 괴로워하는 나를 아시고, ‘사랑하는 아들아, 좀 쉬렴. 네가 하느님 안에서 잘 쉬기만 해도, 나는 너의 쉬고 있는 숨소리에서 묵주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성모님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의무나 횟수가 아니라, 묵주기도 ‘한 단’ 혹은 ‘성모송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바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하느님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성모님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딸꾹질이 멈추면서, 내 안에 있는 죄책감도 멈추길 바라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