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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황 담화로 살펴보는 나눔 실천의 방법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0-11-10 수정일 2020-11-10 발행일 2020-11-15 제 3219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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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에게 뻗은 손길은, 공동의 숙명에 동참하는 것
큰 돈이나 많은 시간 들이지 않아도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나눔은 인류의 공동선을 위한 책임
나눔 문화 심어주는 생애주기별 기부
기념일 기부와 카드포인트 기부 등 교회에서도 다양한 후원 방법 마련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집회 7,32)는 집회서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 주변 약한 이들의 짐을 짊어지라고 권고한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온 몸으로 봉사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를 모범 사례로 제시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연대성을 강조했다.

교황은 이밖에도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목적은 오직 사랑이며, 이 사랑은 나눔과 헌신, 봉사라고 말한다.

교황 담화에 따라 우리 주변에서 드러나는 소소한 사랑의 흔적들을 살펴 보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 코로나19의 작은 영웅들

“전 세계를 고통과 죽음, 절망과 혼돈에 빠트린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린 최근 몇 달 사이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도움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까! 이 모든 손길은 감염과 두려움에 맞서 도움과 위안을 주었습니다.”(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중)

지난 4월 의정부성모병원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초등학생이 정성스레 적은 손 글씨 편지였다. 편지에는 ‘코로나는 코리아를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파이팅!’이라는 응원 메시지와 함께 열심히 치료해 준 의료진 덕분에 우리가 안심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의정부성모병원은 앞서 3월 말 간호사와 환자, 간병인 등이 코로나19에 확진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편지를 받은 의정부성모병원 박태철 원장은 “비록 우리가 힘들고 어렵지만 어린이가 보내 준 응원 편지로 교직원 모두 감동을 받고 힘을 얻게 됐다”며 답장을 손수 작성하고 체온계와 마스크 세트를 선물로 함께 보냈다.

나비효과처럼 한 사람의 작은 움직임이 큰 결과를 가져온 일도 있었다. 지난 2월 말 가톨릭대학교(총장 원종철 신부) 성심교정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익명으로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코로나19 기부 제안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하루 만에 많은 학생들의 긍정적인 답변이 쏟아졌고 바로 모금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김우원(가톨릭대 심리학과 2학년)씨가 모금활동 진행을 위한 책임자로 자원하면서 본격적인 모금이 진행됐다. 졸업생들까지 참여 의사를 밝혀 왔다. 단 5일간 진행한 모금에 1000여 명의 재학생 및 졸업생이 참여해 1777만 원이 모였다. 모인 금액은 ‘전국재해구호협회’와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 전달됐다.

김우원씨는 “학우들이 본인도 힘든 상황에서 적은 금액이라도 보태 많은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며 “우리 학생들의 작은 정성과 관심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나눔의 정신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한 성당 앞에서 아이들이 무료 급식을 받고 있다.

■ 나누는 기쁨

“가난한 이에게 뻗은 손길은, 그리스도 제자로 살아가는 오직 그 기쁨으로 소리 없이 겸손하게 도움을 주는 이들의 미소로 언제나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중)

다른 이들을 위해 베풀고 기부하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빈 병을 팔아 모은 돈으로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푼 이들이 있다.

본지 9월 13일자에 소개된 제주 김녕본당(주임 조성호 신부) 김정선(이시도르·80)·배연임(비비안나·76)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김씨 부부는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공사장 일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자녀들을 양육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한 탓에 부인 배연임씨는 8년 전부터 당뇨를 앓으며 다리를 네 차례나 수술 받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걷기도 힘들 정도로 고생했던 배씨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차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남편 김씨는 이 고마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었다. 부부는 기초연금으로 살아갔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김녕농협에 소액의 금액을 전달했다.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기부금을 마련하고자 빈 병 수집을 시작했다. 주택가와 길거리에 사람들이 마시고 버린 빈 병을 팔아 2017년 11만6000원, 2018년 35만4000원, 2019년 73만5000원, 올해는 102만 원을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김씨는 “주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기에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기쁘다”고 나눔의 기쁨을 전했다.

30년이 넘게 한결같이 봉사한 이도 있다. 1986년경 지인의 권유로 병원 봉사활동을 시작한 박순자(루치아·74)씨는 현재도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과 아주대학교병원에서 무인발급 처리를 돕는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무인수납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무인수납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봉사자들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박씨는 “작은 일이지만 내 손이 필요한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봉사 현장에 가는 것이 늘 기쁘다”며 “어떤 일이든 자신의 힘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그저 묵묵히 드러내지 않고 환우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생이 의정부성모병원 코로나19 의료진에 보낸 응원 편지. 의정부성모병원 제공

빈 병을 팔아 모은 돈으로 이웃돕기 성금을 마련한 제주교구 김녕본당 김정선·배연임 부부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 사랑 실천 방법들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는 말씀은, 자신이 공동의 숙명에 동참하고 있음을 느끼는 인간으로서 저마다 지닌 책임감으로 부르는 초대입니다.”(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중)

사랑 나눔은 큰 돈을 기부하거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작은 관심은 때때로 큰 감동과 위안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아가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나눔은 공동선을 위한 ‘책임’이기도 하다.

이수명(벨라지아)씨는 얼마 전 손자 김지오(안토니오)군 돌상차림 비용을 손자 이름으로 한국희망재단(이사장 최기식 신부) ‘생애 첫 특별기부’에 보냈다. 손자 김군이 나눔을 아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김영교(가타리나)씨도 얼마 전 라파엘나눔재단(이사장 김전)에 아들 명의로 1만 원 정기 후원을 신청했다. 아들에게 나눔과 이웃사랑 정신을 물려주고 싶어서다. 김씨는 “식당에서 밥 한 끼 먹는 비용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어 후원을 결정했다”며 “생활에서 쉽게 쓸 수 있는 금액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만큼 다양한 기부방법을 알아보고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회 내 사회복지 관련 단체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소정의 금액을 기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후원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보의 나눔(이사장 손희송 주교)은 1만 원부터 10만 원까지 ARS와 홈페이지를 통해 정기후원을 받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이사장 유경촌 주교)는 일시, 정기 후원 외에 ‘생애주기별 기부’로 아이에게 기부 문화를 심어줄 수 있도록 했다. 한국희망재단은 기념일 기부, 카드포인트 기부를 통해 후원 방식을 더욱 세분화했다. 라파엘나눔재단은 정기 후원금액 문턱을 가장 낮췄다. 재단은 후원금액을 5000원부터 최대 5만 원까지 정해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이들에게 후원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교회 내 단체를 통해서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보내며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나눔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