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믿음의 눈 / 송유미

송유미(헬레나) 시인
입력일 2020-11-10 수정일 2020-11-10 발행일 2020-11-15 제 321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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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그린 바다에 뜨는 종이 달도,

그대가 나를 믿어 주면 진짜로 보이지요.

만든 나무에 걸린 그림 속의 하늘도

그대가 나를 믿어 주면 진짜로 보이지요.

그대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값싼 축제에 불과해요.

그대의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놀이터의 멜로디라오.

그것은 서커스의 세계, 만든 물건에 불과해요.

그러나 그대가 나를 믿어 주면 진짜가 되어 버리지요.

-재즈곡 ‘종이달’ 가사에서

로마서 3장 22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하고 말씀하신다. 입을 열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주고받는 묵언의 대화. 이런 하느님과의 ‘대화’야말로 삶의 빛나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삶이란 겉보기에는 형식에 매달려 살아가는 듯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은 믿음(약속, 질서 따위)이란 거대한 수레바퀴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삶은 사막을 걸어가는 행군과 같다. 천주교인이든 비신자이든, 모두들 어떤 대상을 목표로 삼아서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믿고, 자식은 어머니를 믿듯이… 원초적인 본능의 심연에 떠오르는 하느님을 믿듯이… 믿음의 강도가 다를 뿐. 죄를 지은 죄인들도 자신의 죄를 적확하게 가늠해 줄 법조인을 의심하면서도 끝까지 믿으려 한다. 그렇다. 인간은 하루라도 믿음 없이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아무리 강한 척해도 어느 한구석은 갈대처럼 약한 곳이 있는 것이다. 한없이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의 인간. 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은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리라.

그러나 현실 속의 우리 사회는 늘 시끄러운 시장 바닥 같다. 아수라장 같다. 믿음이 없는 정치판, 믿음이 없는 학교, 믿음이 없는 가정, 믿음이 안 가는 기업, 믿음이 안 가는 직원, 믿음이 안 가는 남편과 아내, 자신이 낳은 자식마저 믿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마치 모래밭 위에 집을 짓듯이 우리는 날마다 믿음 없는 만남을 반복하고, 뒤돌아서면서 저 사람은 그래도 믿을 수 있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하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집에 오면 또 마음이 흔들린다.

TV의 뉴스에서 쏟아지는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 끔찍한 현실을 우리는 확인하고 싶지 않아 얼른 채널을 돌려 버린다. 엄정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기피한다. 믿음과 사랑이 없는 세상살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우리를 유혹하는 현란한 상업 광고들을 보자. 나약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돈을 벌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사탕발림 같은 광고 속에서 어떤 진정성이 보이면 그 순간 태산같이 요지부동인 인간의 마음은 빗장이 열리고 만다.

그렇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큰 산을 여기저기로 옮길 수 있다는 성경의 말씀은 인간에게 믿음이, 기적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재산보다 귀한 것이다.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노래 가사처럼 “그대가 나를 믿어 주면 진짜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당신이 팥을 팥이라고 하고, 콩을 콩이라고 해도 난 이제 못 믿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행이 마음의 맹인을 만든다고 누군가 말한다. 사람의 말도 못 믿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한 점 의심 없이 온전하게 믿고 사는지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다. 정말 가을볕같이 따뜻하고 절실한 믿음이 그립다. 가장 간절한 기도의 힘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순간순간 내 믿음의 자세를 점검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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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헬레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