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세 어머니의 피에타 / 임미정 수녀

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입력일 2020-11-10 수정일 2020-11-11 발행일 2020-11-15 제 321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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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Pietà)’는 이탈리아어로 비탄을 뜻하며,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품에 안은 성모님의 슬픔을 표현한 ‘피에타’는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남겼는데, 그중에 베를린 ‘노이에 바헤’에 전시된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상(원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이 제게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죽은 아들을 품고 웅크린 채, 깊은 비탄에 빠진 어머니의 모습은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콜비츠 자신이기도 하고, 또한 불의와 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모든 어머니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깊은 슬픔이 있지만, 또한 슬픔을 승화한 강인함이 담겨 있습니다. 콜비츠는 자신의 작품처럼 슬픔을 딛고 정의와 평화에 연대한 예술가로 그의 여러 작품에서 노동자, 농민 등 소외된 이들의 슬픔과 민중연대를 주제로 담고 있습니다.

콜비츠의 피에타를 감상하며 떠오른 두 장면이 있습니다. 1970년 전태일의 영정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이소선 여사, 2018년 노동현장에서 숨진 김용균의 영정을 안고 울부짖는 김미숙 여사의 비탄(피에타)입니다. 다가오는 11월 13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의 50주기입니다. 한 청년노동자의 절규어린 죽음 이후 반세기, 청계천변에는 ‘전태일 50주기’를 기념하는 현수막이 즐비하게 붙어 있고, 주위에 ‘전태일’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니, 노동현장의 엄혹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실로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그는 죽음에 앞서 유서와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나는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1970년8월 일기)

열악했던 당시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산화한 전태일의 죽음 이후, 이소선 여사는 ‘노동자의 어머니’로 아들의 사명을 이어 청계피복노조를 설립하고 그의 동료들과 노동현실 개선에 투신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2018년, 앳된 아들을 하늘로 보낸 또 한 분이 ‘비정규직노동자의 어머니’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여사입니다. 석탄용 컨베이어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기 전, 김용균은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를 호소하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우물에 빠진 아들’의 비유를 들며 위험한 우물 주변에 아들 친구들이 있는데, 아들이 빠졌다고 어떻게 슬퍼하고만 있겠냐며 위험한 작업장 개선을 위해 싸울 것을 다짐했습니다.

전태일 50주기를 예년보다 거창하게 준비하고 있지만, 2020년 현재, 노동현장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후 과중한 업무로 인해 지금도 하루 7명꼴로 노동자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돈’의 우위에 인간 존엄성의 자리를 내줘 버린 현실에서, 신앙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의 노동회칙 서문에, “교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천명하고, 그러한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들을 고발하여 (경제구조, 노동분배구조 재조정 등) 변화들을 이끌어 인간과 사회의 참된 진보를 보장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라고 생각한다.”(「노동하는 인간」 1항)고 했습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노동자들과 만남에서 “인간 존엄성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동이며, 인간의 참된 발전을 이루려면 노동이 보장돼야 하고, 이 과업은 사회 전체의 의무”라고 했습니다. 현재 김용균의 어머니는 아들의 동료인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현장 개선의 제도적 방안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거리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아들을 떠나 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거리에 나와 아들의 사명을 이으며, 다른 아들들을 지키고자 불철주야 애쓰는 김미숙 어머니와 산업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모든 분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제정되도록 저도 함께 연대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안전관리가 미비한 사업장의 중대재해에 대해 안전관리 책임자인 기업과 해당공무원에 강한 처벌을 구형해 산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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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수녀(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