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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맨유 출신 신부님과 함께 축구를?! / 김의태 신부

김의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0-11-10 수정일 2020-11-10 발행일 2020-11-15 제 321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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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프로축구선수 출신인 ‘필립 멀린’이라는 아일랜드 신학생이 사제 서품을 받은 일이 큰 화제가 되었다. 그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에서 경기했던 일명 잘나가는 프로축구선수였다. 그의 동료는 축구를 좋아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 등이다.

왜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건지 모두 궁금해 하시겠지만, 사실 유학 시절 나는 그와 함께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물론 영광스럽게도(사실 그때는 그렇게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축구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가 선보인 노룩 패스와 골대 구석을 찌르는 송곳 슈팅은 정말 일품이었다. 2013년쯤 로마에 있는 50여 개 기숙사 풋살 대항전에 그와 함께 출전해서 동메달을 딴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친구는 1990년대 당시 연봉 9억 정도를 받는 정말 잘나가는 선수였다. 물론 부상 때문에 축구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아일랜드 신학생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신학 수업을 하기 위해 로마에서 수학하게 되었다. 과거 많은 돈을 벌었던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포기하고 사제의 길에 접어들었고, 로마 수학 시절 2~3만 원대 통화만 가능한 핸드폰을 들고 다녔다. 언젠가 그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그 친구는 너무나 당황해하였고, 허둥지둥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며 핸드폰을 찾아 헤매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많은 돈을 벌던 과거의 ‘필립 멀린’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자기 곁에 있는 사소한 물건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는 ‘필립 멀린’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에는 세상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도미니코 수도회로 소속을 옮겨 가난과 청빈으로 사는 봉헌 생활의 삶을 선택하였다. 몇 년이 지나고 기사를 통해 그의 서품 소식을 들었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조셉 디 노이아 대주교는 서품식 강론에서 “멀린 신부는 축구선수로 활약하는 동안 골을 넣으려면 얼마나 열심히 뛰어야 하는지 알았을 것”이라며 “이제 그대의 골(목표)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또 “그대가 믿는 것을 가르치고,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라”고 격려했다.

최고의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그에게 밀알 같은 신앙의 씨앗이 자라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제가 되었다. 하느님의 신비는 정말 오묘하기 그지없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많이 닮은 필립 멀린 사제를 기억하며, 그 친구의 영육 간의 건강을 위해 화살기도를 봉헌한다.

김의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