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57) 사제가 좋아하는 사제되기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10-27 수정일 2020-10-27 발행일 2020-11-01 제 321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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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지구 사제 모임을 마친 후, 모임에 함께 했던 우리 본당 근처 어느 본당 보좌 신부님과 우연히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게 됐습니다. 가끔 그 본당 신부님들과 우리 본당 신부님들이 만난 적이 있었고 때론 저녁을 먹으며 여러 가지 사목정보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곤 했기에, 우리는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걸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

“우리 신부님은 왜 혼자 가셔? 주임 신부님은 우리 신부님을 두고 어디를 가셨나?”

“아, 예. 주임 신부님께선 곧바로 사제관으로 가셨고요, 저는 지금 00극장 앞에서 본당 자모회 식구들을 만나기로 했어요.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를 함께 보려고요. 그런데 신부님은 왜 혼자 가셔요?”

“응, 우리 보좌 신부님은 오후에 미사가 있어서 점심을 먹자마자 먼저 갔어. 난 점심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버스 정류소까지 걸어가려 했는데, 함께 걸으니까 좋네. 서울역 까지만 가면 우리 성당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암튼 우리 신부님도 자모회 식구들이랑 영화도 재밌게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셔.”

“헤헤.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 본당에서 제일 많이 수고하시는 분들이 자모회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저녁 식사도 함께 하려고요. 그래도 사실 가장 편하고 좋은 건 동창 신부들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이긴 합니다.”

“그렇지.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사제의 삶을 잘 살아가는 비법이지. 사목활동을 하는 동안 때론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다보면, 사실 만나서 아무 것도 하는 건 없고 그냥 수다만 실컷 떨고 가는 것 같은데, 바로 그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 되는 거지. 동창 신부님들을 만나면 자연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서로의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재충전과 활력의 시간을 갖게 되지. 이러한 시간들은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영적인 힘을 주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말 그대로 기쁨 속에서 은총을 나누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

“그러게요. 그런 생각을 저도 많이 해요.”

“나 또한 동창 신부님들 중에 친하게 지내는 교구 신부님들이 있고, 그 중에 절친으로 지내는 신부님들도 있지. 그런데 그 신부님들의 생활 방식이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 주변의 신부님들과 자주 만남을 가지고 신부님들과 시간을 꼭 보내려는 모습이지.”

“맞아요. 저도 갓 서품을 받았을 때에는 동창 모임을 자주 했고 대부분의 동창들이 다 모여서 식사도 하고 그랬는데, 15년 정도 지나고 나니 점점 마음에 맞고 취미가 맞는 신부들끼리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동창 신부가 좋다는 걸 알고 동창모임 안으로 돌아올 거야. 나의 절친 신부님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 ‘저 신부들은 태생적으로 신부로 태어나서, 신부로 살다가, 마지막에는 신부로 죽을 거야!’ 실제로 내가 그 신부님들에게 그 말을 하면 그 신부님들은 그저 깔깔-거리며 웃기만 해. 그 신부님들도 나를 만나면 내게 하는 말이 있어. ‘사제 옆에 사제가 없으면 사제 생활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겠어!’ 그리고 그 신부님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 좋은 사제란 바로 동료 사제들이 좋아하는 사제라고.”

문득 나의 절친 신부님들의 얼굴이 생각나면서, ‘좋은 사제는 사제들이 좋아하는 사제’라는 생각으로 언제나 좋은 사제가 되려고 노력하는 이 땅의 많은 신부님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사제들이 좋아하는 사제가 되는 것,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이 좋아하는 사제가 점점 더 많아지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소망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