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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기도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0-10-27 수정일 2020-10-28 발행일 2020-11-01 제 321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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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희생도 컸는데, 한국에 이들을 직접 파견했던 선교회 잡지는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잡지인 「The Far East」 1951년 1월호를 보면 ‘한국 춘천에서 콜리어 신부는 어떻게 살해됐는가’(How Father Collier Was Killed in Chunchon, Korea)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 여기서 골롬반회 한국 지부장 제라티(Brian Geraghty) 신부는 보고서를 통해 전쟁 초기 북한군이 춘천에 진주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령관은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신부의 주머니를 뒤져서 시계, 묵주 등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면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총살당할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콜리어 신부는 이미 진술했던 사실을 다시 얘기했습니다. (중략) 한 십 분쯤 후에 행렬은 멈췄고, 도시에서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에 대한 사실을 말하라고 다시 요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방향을 틀어서 다시 걸어가게 했는데, 몇 걸음 가지 않아서 기관총의 첫 번째 총알이 콜리어 신부를 맞췄습니다. 또 다른 총알이 발사되고 신부가 쓰러졌습니다.”

소양로 본당 주임이었던 콜리어(Anthony Collier) 신부는 1950년 6월 27일에 총살당했는데, 함께 체포됐던 한국인 김 가브리엘은 요행히 목숨을 건졌고 훗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복음적 열성으로 ‘세상 끝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비참하게 살해된 이야기는 잡지 독자인 신자들에게 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지만, 잡지 「The Far East」는 자비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교회는 가장 악한 폭력의 순간에도 십자가 화해의 소명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서 심판보다 자비가 선행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는데, 1951년 6월호 표지기사에서는 전사자를 위한 장례가 치러지는 군인 묘지 사진과 함께 그리스도의 성심(聖心)을 그린 성화를 싣고 있다. 잡지는 죽음 앞에서는 빈부나 명예나 인종 차이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음 설명을 이어간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12개의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이었다. 병사와 민간인, 선교사와 무신론자, 이교도와 그리스도교인, 성인과 죄인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가 당신의 목숨을 내놓을 만큼 사랑했던 영혼들일 뿐이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위령 성월에는 한국 천주교회가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영혼들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적’이 될 수 없는 불쌍한 인류를 기억하면서 예수님 자비의 마음을 닮기 위해 노력하자.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