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56) 실수와 행복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10-20 수정일 2020-10-20 발행일 2020-10-25 제 321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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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방학 동안, 수사님 한 분이 논문 작업을 하려고 매일같이 내가 있는 수도원을 찾아 왔습니다. 코로나19와 불볕더위로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그 수사님은 성실하게 공부한 후 저녁이 되면 본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수사님 뒷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내지만, 마음은 안쓰러웠습니다.

그 수사님은 사제관의 내 옆 방 회의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평소에 나는 업무로 인해 수사님이 공부하는 회의실 옆을 늘 왔다 갔다 했지만, 수사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내 방과 회의실이 붙어 있어서 전화하는 소리, 음악 듣는 소리, 그 밖의 모든 소리들이 다 들렸지만 수사님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자신의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하루 일과를 다 마친 나는 책상에 앉아 다음 날 강론이랑 이거저것 글을 쓰다가, 심심하던 차에 인터넷을 통해 유튜브에 들어갔습니다. 볼만한 것을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가수 양희은과 어떤 젊은 여자 가수가 함께 부르는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노래 가사가 마음을 찡하게 울렸고, 실제로 화면에는 그 노래를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나 또한 그 노래를 한 번, 두 번 재생해서 듣다가 눈가에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그런 다음엔 김진호라는 젊은 가수가 부른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어느 가사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순간, 고향에 계신 부부님 얼굴이 생각났고, 그 동안 나를 위해 헌신해 주신 많은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노래를 열 번 정도 더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노래에 푹-빠져, 나도 모르게 노래를 크게 여러 번 듣고 있던 중에…. 바로 옆 방 회의실에서 공부하는 수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고, 맞다. 옆방에 우리 수사님 공부하고 있지! 이런…. 노랫소리에 얼마나 방해가 되었을까! 미안해서 어쩌지….’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서둘러 인터넷을 끄고,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어 조용히 책상에 앉아 강론 쓰고, 책도 읽었습니다.

이윽고 밤 10시 가까이 되자 그 수사님은 공부하던 책상을 정리한 후 가방을 메고 내 방에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강 신부님, 오늘도 공부 잘 하고 돌아갑니다. 내일 또 올게요.”

“아, 그래? 수고했어. 이렇게 성실하게 공부하니, 다 잘 될 거야.”

말은 태연하게 했지만, 정말 그 수사님에게 미안했습니다. 힘들게 공부하고 있었을 텐데, 나는 기분 전환을 할 겸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들었으니…. 못내 찝찝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 수사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습니다.

‘수사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머릿속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고, 공부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수사님 방에서 음악소리가 잔잔하게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나서 몰래 흐느껴 우느라 혼났습니다. 수사님, 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언제나 저를 위해 응원하고 계신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지금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을 먹었고, 흩어진 마음을 다시 붙들어 맸습니다. 수사님 덕분에 오늘 저녁,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나의 바보 같은 실수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주었다니! 세상살이,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좋은 감동’이란 옳고 그름을 넘어 시공간까지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